
SK하이닉스가 25년7개월 만에 한국 증시의 역사를 다시 썼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내부 반대에도 인수를 밀어붙여 2012년 출범한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제치고 유가증권(코스피)시장 시가총액 1위에 오르면서 그의 경영 안목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업황 침체기에도 투자를 멈추지 않은 역발상 전략과 인공지능(AI) 시대를 내다본 반도체에 대한 베팅이 결국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다.
22일 SK하이닉스는 전 거래일보다 5.57% 오른 291만8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시가총액은 2079조6655억원으로 삼성전자(2060조8132억원)를 18조8523억원 차이로 앞서 25년 7개월 만에 코스피 1위가 바뀌었다. SK텔레콤이 인수 계약을 체결한 2011년 11월 당시 시총이 약 15조원 수준이었음을 고려하면 138배 수준으로 불어난 수치다.
이날 1.30% 내린 272만8000원으로 하락 출발한 SK하이닉스는 곧 상승 전환한 뒤 장중 6.55% 급등한 294만5000원까지 치솟으며 종일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SK그룹이 인수할 당시 유가증권시장 시총 1위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실제 최 회장이 하이닉스 인수를 추진하던 당시에도 안팎의 반대가 거셌다. 언제 망할지 모르는 적자 기업을 왜 사들이냐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인수작업이 한창이던 2011년 3분기와 4분기 하이닉스는 각각 2909억원, 106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인수를 중도에 포기한 효성, 현대중공업, STX 등이 승자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상황이 녹록지 않았지만 최 회장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투자만 제때 이뤄지면 반도체 상승 사이클 때 투입한 금액 이상을 회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에너지·화학, 정보통신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어렵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그는 하이닉스 인수 후 공동대표를 맡아 책임경영을 선언했고 회사 인근 대형 호프집을 빌려 직원들과 직접 맥주잔을 부딪치며 미래를 그렸다. 매년 조 단위 연구개발(R&D)비를 투자해 2022년 세계 최초로 4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를 양산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최 회장의 반도체 투자는 부친인 최종현 선대회장의 유훈을 잇는 측면도 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78년 "미래 산업의 중심은 반도체"라며 선경반도체를 설립했다가 2차 오일쇼크로 꿈을 접어야 했다. 하이닉스 인수 직후 최 회장은 "조속히 정상화해 그룹과 하이닉스가 질적 성장을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대규모 투자 등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의 출범과 성장 과정에서 최 회장 못지않게 활약한 인물이 있다. SK하이닉스 공동대표를 맡았던 박정호 전 부회장이다. 인수가 추진되던 2011년 반도체 사업은 매년 수조원의 시설투자가 필요한 만큼 투자한 금액에 비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작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주를 이뤘다.
2011년 7월 SK텔레콤이 하이닉스 인수전에 참여한다고 밝히자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박정호 SK텔레콤 사업개발부문장이 내부 여론을 조율하면서 인수를 추진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에게도 "하이닉스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여러 차례 제언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SK하이닉스를 바라보는 시각도 180도 바뀌었다. 증권가는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최고 500만원으로 높였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최근 목표주가를 500만원으로 상향했고, SK증권은 400만원, 미래에셋증권·KB증권·신한투자증권은 각각 380만원을 제시했다.
손인준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81% 증가한 275조5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며 "중앙처리장치(CPU) 수요 강세와 차세대 AI 플랫폼 램프업, 프리미엄 스마트폰 업체들의 메모리 확보 경쟁이 겹치면서 공급 부족 현상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6.8배로 마이크론의 11배보다 크게 낮다"며 "향후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은 밸류에이션 재평가의 직접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