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프랑스 출신 사운드 디자이너인 해미 클레멘세비츠가 이같이 말했다. 클레멘세비츠는 다음달 3~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초연작 <바람만으로 모래만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를 선보인다. 해금, 거문고, 비올라 다모레 등의 소리와 국악 정가, 중세 성가 등을 섞어 소리가 생겨나고 의미를 갖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한국과 프랑스의 소리들을 모았다.
한국과 프랑스의 옛 악기가 만난다
공연명 <바람만으로 모래만으로 소리가 나지 않는다>처럼 소리는 모래만으로, 바람만으론 나지 않는다. 이들이 부딪쳐야 소리가 난다. 이 공연은 클레멘세비츠를 비롯 프랑스 음악인 3인, 한국 음악인 3인이 관계를 맞어야 탄생하는 소리의 발생과 확장, 소멸 등을 부여주는 ‘소닉 씨어터’다. 음악이란 표현 대신 음향을 가리키는 ‘소닉’이란 단어와 영상 전시 공간을 뜻하는 ‘씨어터’란 어휘를 붙인 일종의 소리 전시 무대다.

이 공연은 예쁜 소리만을 들려주는 자리가 아니다. 소리의 등장 자체가 중요한 무대다. 무대에 오른 음악인들은 아이가 뱃속에서 듣는 소리, 중세 성당에서 신에 대한 기도를 담아 노래했을 성가 등에서 착안한 소리 등 소리의 다채로운 면모를 선보일 예정이다. 해금과 거문고 등 국악기가 소리의 탄생을 연출한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해금 연주자 김예지는 “모든 소리는 관계에서 출발한다”며 “공연장에 있는 공조기 소리도 활용해 소리의 근원을 다루겠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선 17~18세기 쓰인 현악기인 비올라 다모레의 음색도 들을 수 있다. 소리를 내는 현 밑에 소리에 울림을 더하는 ‘공명 현’이 따로 달린 악기다. 유럽에서 쓰였지만 튀르키예나 페르시아 등 이슬람 문명권의 음악과도 어울리는 오묘한 음색이 매력이다. 이 공연에서 비올라 다모레 연주를 맡은 프랑스 연주자인 올리비에 마랭은 “이란에도 비올라 다모레와 비슷한 악기가 있다”며 “서로 다른 악기에서 음악적 유사성을 발견하고 다른 문화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리 그 자체를 즐겨주세요”
소리의 관계를 탐구하는 음악인들의 화두는 ‘컨템포러리’의 정의다. 이 단어는 선율에 의존하지 않고 음악의 본질을 탐구하는 현대 음악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동시에 관객에게 일종의 난해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마랭은 컨템포러리의 원래 뜻인 ‘동시대성’에 주목했다. “컨템포러리 아티스트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연결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현재, 서쪽과 동쪽을 각각 이어주는 교차점에 서 있는 사람이죠.”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이번 공연은 한국과 프랑스의 음악을 동시대성이란 화두로 한 공연에 담는다. 클레멘세비츠는 “한국어와 프랑스어의 모음은 언제든지 음악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며 “이 모음의 언어별 차이, 국악 정가와 중세 성가 등을 연결짓는 것뿐 아니라 전통적인 음색과 전자음이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지를 생각해 이번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예지는 “관객들이 이 공연을 실험적으로 느끼기보다 소리 그 자체를 즐기러 왔으면 한다”고 했다.

공연은 무대를 바꿔가며 열린다. 오는 24일 수원시립미술관에선 축약 형태로 오픈 리허설이 먼저 열린다. 다음 달 7일 서울 일민미술관 옥상에서도 축약본 공연이 잡혀 있다. 오는 10월엔 프랑스 파리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 영국 런던 스톤 네스트 등에서 유럽 관객들을 만난다. 김예지는 “일민미술관 옥상에서 듣게 되면 소리가 아래에서 듣는 것보다 뭉개지듯 들린다”며 “이러한 공간에서 있었는지 몰랐던 소리들을 꺼내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