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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유명한 와인인 키안티 클라시코 병에는 특이하게도 포도가 아니라 검은 수탉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키안티 지역을 대표하는 익숙한 상징이지만, 그 뒤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진다.
중세 시대 피렌체와 시에나는 오늘날의 키안티 지역을 두고 오랫동안 국경 분쟁을 겪어왔고, 끊임없는 다툼에 지친 양측은 국경을 정하기 위한 특별한 방법에 합의했다. 양 도시에서 기사 한 명씩을 출발시키고, 두 기사가 만나는 지점을 국경으로 삼기로 한 것이다. 출발 시각은 닭이 우는 순간이었다. 규칙은 양측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됐다.
시에나 사람들은 규칙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다. 가장 건강하고 목청이 좋은 흰 닭을 준비했고, 그 도시에서 가장 빠른 말을 골라 기사에게 내어준 뒤 충분히 사료를 먹이고 일찍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더 빨리 달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피렌체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빨리 달리는 것보다 일찍 출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닭이 더 일찍 울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결국 검은 수탉을 어두운 곳에 가두고 먹이를 주지 않았다. 배고프고 예민해진 수탉은 동이 트기 전부터 울어대기 시작했고, 피렌체 기사는 그 울음소리를 듣고 상대보다 훨씬 먼저 출발할 수 있었다. 결국 피렌체는 대부분의 키안티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고, 오늘날 키안티 클라시코 병에 그려진 검은 수탉은 바로 이 전설을 기념하는 상징이 되었다.
이 이야기가 오랫동안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히 영리한 계책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종종 규칙을 지키는 것과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피렌체는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출발 신호도 닭 울음소리였고, 기사도 정해진 순간에 출발했다. 다만 그들은 규칙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고민했을 뿐이다. 반대로 시에나는 규칙을 준수했지만 규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는 못했다.
상식과 관행을 의심하라

비슷한 사례는 현대 스포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미국 수영선수 데이비드 베르코프는 배영 100미터 경기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규정에는 출발 후 몇 미터 안에 반드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한다는 제한이 없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관행대로 입수 후 잠시 잠영한 뒤 곧바로 수면 위에서 배영을 시작했다. 그러나 하버드 학생이던 베르코프는 물 속보다 수면 부근에서 받는 저항이 더 크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래서 그는 수면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 최대한 오래 전진하는 전략을 선택했고, 출발 후 30미터가 넘는 거리를 거의 물속에서 잠영으로 이동했다. 결과는 세계신기록이었다.
일부에서는 편법이라고 비판했지만 그는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규칙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규칙이 허용하는 범위를 탐색하여 최대한 활용한 선수였다. 결국 국제수영연맹은 규정을 개정해 출발 후 15미터 이내에 반드시 수면 위로 올라오도록 했다. 베르코프는 규칙을 위반한 선수가 아니라 규칙을 바꾼 선수가 된 것이다.
검은 수탉과 베르코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둘 다 규칙을 어기지 않으면서, 남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관행과 상식을 의심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규칙을 단순히 지켜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대상으로 삼았다.
재판·소송에서도 규칙 능동적 활용해야

재판 실무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자주 본다. 재판은 사실과 법리에 따라 결론이 나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소송법이 정한 절차와 규칙에 따라 진행되는 일종의 게임이기도 하다. 많은 당사자들은 소송법상 절차를 단순히 따라야 하는 형식적 규정으로 이해하지만, 변호사에게 이러한 규칙은 넘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활용해야 할 도구다.
객관적 전력이 강한 팀이 언제나 승리하는 것이 아니듯, 객관적으로 불리한 소송도 규칙을 어떻게 활용하며 전략을 세우느냐에 따라 판세를 뒤집기도 한다. 어떤 사건에서는 더 다툴 여지가 남아 있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증거조사를 마무리하는 것이 유리하고, 반대로 어떤 사건에서는 절차적 권리를 최대한 활용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 되기도 한다.
형사재판에서 불리한 진술조서를 부동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증인의 법정 진술이 오히려 더 불리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전략적으로 동의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동일한 규칙이라도 사건의 성격과 목표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규칙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정해진 절차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대개 다르게 행동한다. 그들은 규칙을 꼼꼼히 파악하고, 그 규칙이 허용하는 범위를 끝까지 탐색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가장 유리한 길을 찾아낸다.
검은 수탉을 선택한 피렌체가 그랬고, 데이비드 베르코프가 그랬다.
중요한 것은 규칙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적극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주어진 제도와 환경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기회를 발견하며, 남들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검은 수탉의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승리한 피렌체 사람들은 더 강한 군대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더 빠른 말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같은 규칙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던 것이다.
규칙은 우리를 묶어두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규칙 아래서도 누군가는 기회를 발견하고, 누군가는 기회를 놓친다. 검은 수탉의 전설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재판이든 사업이든 인생이든, 경쟁은 모두가 같은 규칙을 공유하는 곳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결국 앞서 나가는 사람은 규칙을 가장 충실히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규칙 속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가능성을 발견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