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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두 번의 칼럼을 통해 규제적 탄소시장(CCM)의 유상할당 확대 흐름과, 그 제도권 밖에서 중소기업·지자체·개인의 자발적 감축 노력을 경제적 보상으로 연결하는 자발적 탄소시장(VCM)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리고 VCM의 발전을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인증제도와 법적 체계의 구축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행히도 정부는 최근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K-VCM)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 얼라이언스' 출범식을 열고 자발적 탄소시장법 제정과 한국거래소 내 VCM 거래소 신설을 공식화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NH투자증권, IBK기업은행 등이 나란히 참석한 이 행사는 탄소시장이 더 이상 환경부처만의 과제가 아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탄소크레딧에 법적 지위를 부여

현재 국내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거래되는 크레딧에는 법적 지위가 없다. 베라(Verra)나 골드스탠다드 같은 외국의 민간 인증 기관이 발행한 크레딧은 국제적으로 통용되지만, 그것이 국내법상 어떤 권리인지, 거래 분쟁이 생겼을 때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를 규율하는 법이 없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자발적 탄소시장법의 핵심은 탄소크레딧에 명확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감축 사업자는 등록기관을 통해 감축 실적을 승인·인증·발행받고, 거래와 소각 사실도 등록해야 법적 효력이 인정된다.
크레딧의 발행에서부터 유통·소각에 이르는 전 주기가 하나의 제도적 틀 안에서 관리되는 구조다. 그동안 국내 VCM에서 거래되는 크레딧은 법적 지위가 없어 기업들이 투자와 시장 참여에 불확실성을 느껴왔는데, 법 제정은 이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VCM 제도화의 과제도 분명하다. 실제 감축 효과가 없는 '유령 크레딧' 문제는 글로벌 VCM이 직면했던 가장 큰 위기였다. 신뢰 없이는 시장도 없다. 따라서 법안에는 평가기관이 추가성, 투명성, 영구성 등 국제적 무결성(integrity) 원칙에 따른 평가지표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겨야 하며, 그린워싱 행위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 규정도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거래소에 자발적 탄소시장 거래소 신설

정부는 올해 말 한국거래소 안에 자발적 탄소시장 전용 거래소를 신설할 예정이다. 이 거래소는 기존에 흩어져 있던 다양한 크레딧을 품질 기준에 따라 상품군별로 표준화하고 통합적으로 거래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시장 활성화의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해외 수요자의 국내 크레딧 구매도 허용하고, 해외 등록기관이 발행한 크레딧의 국내 거래소 상장도 검토할 방침이다. 파리협정 제6조에 따른 국제 탄소시장 활성화, 그리고 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CORSIA)의 도입으로 글로벌 VCM 거래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가 한국을 아시아 탄소 허브로 도약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힌 점은 주목할 만하다.
중소기업과 개인의 탄소감축 노력도 자산이 된다
이번 정책의 핵심 수혜자 중 하나는 대기업 중심의 기존 배출권거래제(ETS)의 밖에 있던 중소기업과 개인이다. 현행 ETS는 연평균 배출량 12만 5000톤 이상이거나 2만 5000톤 이상 사업장을 보유한 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며,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중소기업, 스타트업, 개인은 그동안 감축 의무도, 감축 보상도 없는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VCM이 제도화되면 이 구조가 바뀐다. 중소기업이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을 통해 온실가스를 줄이거나, 스타트업이 혁신적인 기후 기술로 감축 실적을 만들어내면, 그것을 탄소크레딧으로 인증받아 시장에서 팔 수 있다. 이는 해당 기업들에게 새로운 자금 조달 창구이자 경제적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의 압박이나 RE100 달성, ESG 공시 의무화에 직면한 기업들 입장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국내산 크레딧을 구매하여 탄소중립 목표를 유연하게 달성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지가 생기는 셈이다.
2030년까지의 과제와 민간의 주도적 참여 필요성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추가로 1억 8000만 톤을 더 줄여야 한다. 지금까지 감축해 온 양의 두 배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탄소 감축 비용은 뒤로 갈수록 가파르게 올라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존의 규제 시장만으로는 이 격차를 메우기 어렵다. 한국형 VCM의 구축은 그 격차를 민간의 혁신과 자본으로 채우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다.
한국형 VCM이 아시아 탄소 허브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서두르되 시장의 신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정부는 자발적 탄소시장 무결성 위원회(ICVCM)가 제시한 핵심 탄소 원칙(CCP) 등 국제 기준을 충실히 반영하여 법을 제정해야 한다. 한국에서 인정되는 탄소크레딧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품질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초기부터 꼼꼼히 설계할 필요가 있다.
법과 제도의 틀이 마련되면, 그 다음은 민간의 역할이다. 기업들은 탄소 감축을 단순히 규제 대응을 위한 방어적 비용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수익 모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꼼꼼하고 신속한 법적 기반 마련과 민간의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참여가 조화를 이룰 때, 한국형 VCM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기후 경쟁력을 이끄는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탄소를 줄이는 것이 곧 새로운 수익이 되는 시대가 지금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