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외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인공지능(AI) 시대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어떻게 친환경적으로 확보하느냐입니다. 기업이 추진한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인증받은 뒤 이를 국제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새 제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김상협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사무총장은 21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향후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글로벌 자발적 탄소시장(GVCM)을 제시했다. GGGI는 현재 재정경제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과 함께 GVCM 체계를 설계하고 있다. 2029년 운영을 목표로 올해부터 운영 규칙과 인증 방법, 등록 시스템 등을 마련하고 있다.
◇韓주도 국제 규범 나오나
김 총장은 “GVCM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감축 활동을 실시하고, 신뢰성 있는 기구의 인증을 받아 거래하도록 하는 체계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며 “국제기구와 정부가 참여하는 신뢰성 있는 검증 체계가 뒷받침된다면, 새로운 국제 규범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시도가 성공한다면 한국이 설계한 대표적인 국제 규범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이 글로벌 규정의 수용국이 아니라 설계국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 총장은 GGGI 역할의 중요성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탄소감축 관련 국제기구 중 두 곳이 한국에 본부를 두고 있다. GGGI와 유엔 산하 녹색기후기금(GCF)이다. 두 기구는 각각 2012년과 2013년에 출범했다. 유엔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비하면 역사는 짧다.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을 통한 ‘공동 성장’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맡고 있다는 점에서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김 총장은 “일본은 자신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을,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며 “한국도 GGGI를 글로벌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고, 이 기구의 역할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GGGI의 역대 첫 한국인 사무총장이다. 현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GGGI 의장을 맡고 있다.
실제 GGGI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출범 당시 16개국이었던 회원국은 현재 총 55개국으로 늘었다. 인도는 지난달 한-인도 정상회담에서 GGGI 가입 의사를 공식화했다. 이집트도 최근 가입 의향서를 제출했다.
재정 규모도 커지고 있다. GGGI가 조성한 녹색금융 규모는 누적 180억달러에 이른다. 지난해에만 약 40억달러 규모의 녹색금융 조성에 기여했다. 김 총장은 “전 세계적으로 공적개발원조(ODA)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차별화된 노력을 통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확장하는 탄소거래 플랫폼
김 총장은 GGGI의 주요 역할 중 하나로 2년 전 출범한 탄소거래 플랫폼(CTF)을 꼽았다. 파리협정 6조에 따라 한 국가가 달성한 감축 실적을 다른 국가가 자국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에 활용할 수 있는데, 이러한 거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GGGI의 플랫폼엔 노르웨이, 스웨덴, 뉴질랜드, 영국, 싱가포르 등 5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약 2억달러 규모의 자금이 조성됐다. 노르웨이는 이를 통해 잠비아의 재생에너지 사업에서 발생하는 탄소 감축 실적 350만t을 구매하기로 했다. 김 총장은 “앞으로 여러 국가에서 중요한 거래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향후 기후위기 대응의 방향과 관련해선 민간 혼합금융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 재원만으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 총장은 “민간 자본의 참여 없이는 녹색 전환이 불가능하다”며 “공공자금이 먼저 위험을 분담하고 민간 자금을 끌어들이는 혼합금융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GGGI는 최근 총장 직속 민관협력(PPP) 조직을 신설했다. 글로벌 금융기관과 민간 기업의 참여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김 총장은 “과거 국제기구가 정부, 다자개발은행(MDB) 등과의 협력을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GGGI는 앞으로 민간 부문과의 협력도 크게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