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68년 묵은 '신분제 장벽' 허무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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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68년 묵은 '신분제 장벽' 허무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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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이 68년 묵은 후커우(戶口·호적) 제도를 완화하고 있다. 내수 부진을 해소하고 도시 노동력 확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도시 경제를 떠받치던 농촌 출신 이주노동자가 빠르게 줄고 있는 데다 도시에서 돈을 벌면서도 장기 정착과 소비를 미루고 있는 현실을 개선할 필요가 높다는 판단에서다.
    도시 노동력 확보 위해 개혁

    중국 국무원은 최근 ‘상주지 기준 기본공공서비스 제공 추진에 관한 실시의견’을 발표했다. 근로자가 자신의 공식 호적지가 어디인지와 관계없이 실제 일하고 거주하는 도시에서 사회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연금과 의료보험 등 사회보험 가입 자격을 출생지나 호적지에 묶어두던 관행을 완화하고 상주지를 기준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다.

    현행 후커우 제도는 1958년 1월 제정·시행된 ‘중화인민공화국 호구등기조례’를 법적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 조례는 모든 중국인은 호구등기를 해야 하며 한 사람이 한 곳의 상주인구로 등록된다고 규정했다. 특히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려면 도시 노동 부문의 채용 증명이나 학교 입학 증명, 도시 호구등기기관의 전입 허가 증명이 필요하다. 중국 정부의 이번 제도 개혁은 도입 68년 만에 사는 곳과 복지 접근권을 분리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다. 후커우 제도 전체 폐지는 아니지만 사회보험과 기본공공서비스 영역에서 호적지 제한을 푸는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중국 정부의 이번 개혁이 교육, 기본 의료, 공공임대주택, 사회보험 등 기본 서비스 접근권을 호적지가 아니라 상주지에 기반해 제공하도록 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중국 정부가 10년 넘게 후커우 제도 개혁을 시도해 왔지만 이번 조치는 이주노동자가 실제로 일하는 도시에서 사회보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는 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조치라고 평가했다.

    중국 정부가 후커우 제도 개혁에 나선 건 중국식 도시화의 모순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간 농민공, 즉 농촌 호적을 가진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에 의존해 ‘세계의 공장’ 지위를 구축해왔다. 농민공들은 도시의 공장과 건설 현장, 물류·배달·서비스 산업에서 일하면서도 현지 호적이 없다는 이유로 도시 주민과 같은 의료·교육·주거·연금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여기에 사람은 이미 도시로 왔지만 재정과 복지는 여전히 호적 인구 기준으로 배분되는 문제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도시는 노동력을 활용하면서도 복지 부담을 떠안기를 꺼렸고 농민공은 도시에서 돈을 벌지만 장기 정착과 소비를 미뤄왔다.


    실제 국무원도 “상주지 기준 기본공공서비스 제공이 더 나은 생활 수요를 충족시키고 도시화의 질을 높이며 국내 수요 잠재력을 방출하면서 새로운 발전 구도 구축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공공서비스 시설을 상주인구와 서비스 반경에 따라 배치하고 재정 배분 때 상주인구 요인을 반영하겠다고 했다.

    농민공을 ‘도시 소비자’로 전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번 제도 개혁에는 중국의 노동력, 내수, 부동산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국가통계국의 최신 농민공 조사를 보면 중국의 노동력 구조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농민공은 3억115만 명으로 전년보다 142만 명, 0.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 중 호적지 밖에서 일하는 농민공은 1억8006만 명으로 0.8% 증가했다. 성(省)을 넘어 이동한 농민공은 6765만 명으로 전년보다 75만명 줄어 1.1% 감소했다. 농민공 전체 규모는 여전히 크지만 과거처럼 농촌의 젊은 노동력이 대도시와 연해 제조업 벨트로 밀려드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는 의미다.


    또 농민공의 평균 연령은 지난해 43.3세로 전년보다 0.1세 높아졌다. 50세 이상 농민공 비중은 32%로 2021년 27.3%에서 계속 상승세다. 농민공 세 명 중 한 명이 50세를 넘은 셈이다. 농민공이 고령화하고 이동성은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중국 정부는 도시에서 일하는 농민공에게 사회보험과 공공서비스를 제공해 생산성 높은 노동력을 붙잡을 필요가 절실해졌다.

    내수 부진도 후커우 개혁을 부추겼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주노동자는 돈을 벌지만 사회보장 참여 수준이 낮아 소비를 적게 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번 조치가 후커우 장벽을 낮추고 인구 이동 흐름에 적응하는 정책이면서 동시에 도시화와 부동산 시장, 소비 여력 확대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후커우 제도는 오랫동안 중국의 경제성장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반대로 소비경제에는 불리한 구조를 구축했다. 농민공은 도시에서 월급을 받지만 언제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주거, 교육, 의료, 노후 준비에 필요한 지출을 꺼렸다. 지난해 농민공의 월평균 소득은 5075위안으로 전년보다 2.3% 늘었다. 이 소득이 도시 소비로 충분히 전환되려면 의료비와 연금, 자녀 교육에 대한 불확실성이 낮아져야 한다. 사회보험을 일하는 도시에서 들 수 있게 하는 것도 농민공의 현재 소득을 미래 불안에 묶어두지 않고 소비로 일부 전환시키려는 장치로 볼 수 있다. 그동안 도시 재정 부담 탓에 후커우 제도 개혁을 미뤄왔지만 악화하고 있는 내수에 제도 장벽을 낮췄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中, 분리형 도시화 벗어나나

    이번 개혁은 농민공 자녀 문제와도 직결된다. 중국에서는 부모가 도시로 돈을 벌러 떠나고 아이는 고향에 남는 아동을 유수아동이라고 부른다. 부모와 떨어진 아동 문제는 단순한 복지 문제가 아니라 도시화의 질, 교육 격차, 장기 인적자본 축적과 연결되고 있다. 이번 후커우 제도 개혁 내용을 보면 이주 아동이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도시에서 공립학교에 다니고 조건을 충족할 경우 거주지에서 입학시험을 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농민공이 도시에서 일만 하고 가족은 고향에 남겨두는 분리형 도시화에서 가족 단위 정착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노동력 확보와 함께 가족 해체 비용 축소도 중국 정부가 노린 개혁의 목적이란 시각이 많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이번 제도 개혁으로 사회보험과 의료·교육 접근성이 높아지면 농민공 가계의 예비적 저축 압력이 줄고 도시 내 주거·교육·서비스 소비가 늘어날 여지가 생긴다”며 “사회보험, 자녀 교육, 공공임대주택은 노동력 유치의 새로운 경쟁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앞으로 효과는 지방정부 실행 능력에 달려 있다”며 “후커우 장벽을 낮추는 문제는 복지 개혁보단 중국 경제의 성장 방식 전환과 직결된 과제”라고 덧붙였다.


    베이징=김은정 한국경제 특파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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