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피렌체, 산마르코 수도원의 한 평 남짓한 좁은 기도실. 600여 년 전 수도사들이 홀로 명상하던 작은 공간의 벽에 거장 프라 안젤리코(1395~1455)가 그린 프레스코화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벽화 속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한 예수를 맞이하며 무릎을 꿇고 있다. 마리아가 입은 옷은 맑은 주황색. 그 옆 벽에 정확히 똑같은 주황색으로 그린 그림이 한 점 걸려 있다. 미국 추상화의 거장 마크 로스코(1903~1970)의 작품이다.
근대 유럽 문명의 출발점인 피렌체가 지금 로스코의 도시가 됐다. 르네상스 시대 궁전 팔라초 스트로치에서 열리는 대규모 전시와 함께 산마르코 수도원과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현관 등 유적 세 곳이 로스코 전시장으로 변신했다. 로스코의 색과 추상이 피렌체라는 도시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게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로스코, 그림을 만나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로스코의 그림 앞에는 그런 사람이 유난히 많다. 그의 그림은 단순하다. 거대한 캔버스를 사각형 색깔 덩어리 두세 개로 가득 채웠을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큰 그림 앞에 서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거대한 화면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색이 일렁이고, 그림 안쪽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그 앞에 오래도록 서 있다 보면 마음은 자연스레 가라앉는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한국 추상화 거장 김환기도 로스코의 광팬이었다.로스코가 이런 그림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을 다루는 전시가 메인 전시장인 팔라초 스트로치에서 열리고 있다. 러시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마르쿠스 로트코비츠. 미국으로 이민 간 로스코의 가족은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가난해졌다. 명문 예일대에 입학했지만 학비에 허덕이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뉴욕으로 떠났다.


뉴욕에서 방황하던 그는 어느 날 친구를 따라 인체 드로잉 수업에 들어갔다. 그 한 번의 수업이 인생을 바꿨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로스코는 미술관에서 거장들의 그림을 모사하기 시작했다. 전시장 첫 번째 방에 걸린 1936년 자화상은 이 시기 작품이다.
시간이 흐르며 그의 그림에서는 형체가 점점 풀어지고, 색이 앞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철학과 신화에 깊이 몰두한 그는 이후 초현실주의풍 작업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흔여섯 살이던 1949년, 거대한 캔버스에 뜬 사각형 색 덩어리 두세 개와 화면을 가득 채우는 빛이 등장한다. 후대에 ‘색면 회화’라고 불린 그의 화풍이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빌려온 그의 대표작 ‘No. 3 / No. 13’(1949)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피렌체에 간 로스코
이듬해인 1950년 로스코는 평생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떠났다. 책으로만 보던 옛 거장들의 작품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 이탈리아에 온 그는 피렌체에서 두 곳에 멈춰 섰다. 위성 전시가 열리고 있는 산마르코 수도원과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이다.산마르코 수도원은 도미니코회 수도사들이 살던 곳이다. 이곳 출신 수도사인 프레스코화의 거장 프라 안젤리코가 곳곳에 그림을 그렸다. 프레스코는 젖은 회반죽 벽 위에 물감을 바르는 기법으로, 이렇게 그리면 벽과 그림이 한 몸처럼 느껴진다. 60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그림은 맑고 섬세하다. 로스코는 이 그림들을 통해 어떻게 색이 벽과 하나가 돼 명상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지를 배웠다.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입구에는 미켈란젤로가 1520년대에 설계한 좁은 현관 공간이 있다. 차가운 회색 돌로 된 거대한 계단실이 사람을 짓누르듯 솟아 있다. 답답하면서도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로스코는 말했다. “문과 창문이 모두 벽돌로 막힌 방에 갇혀 영원히 벽에 머리를 들이받을 수밖에 없는 느낌. 미켈란젤로가 표현한 그 느낌이 바로 내가 추구하는 것이다.”
두 풍경을 마음에 간직한 채 미국으로 돌아온 로스코는 전성기를 맞는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작품 ‘무제’(1952~1953)는 가로 4m42㎝, 세로 3m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로 궁전의 한 방 전체 벽을 통째로 차지하며 관객을 압도한다.

1958년은 로스코에게 가장 바쁜 해였다. 그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국관 참여 작가로 선정됐다.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라는 의미다. 같은 해 그는 뉴욕에 새로 짓는 시그램 빌딩의 고급 식당 벽화를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의뢰를 받자마자 로스코는 안젤리코의 벽화를 떠올렸다. 이번 팔라초 스트로치 전시에는 시그램 벽화의 준비 드로잉들이 별도의 작은 방에 모여 있다. 평소엔 거의 공개되지 않는 자료다.
로스코 채플, 그리고 마지막 그림
1964년 로스코는 휴스턴에 짓고 있는 가톨릭 명상 공간의 벽화를 통째로 맡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팔각형 방에 14점의 거대한 그림을 채우는 작업이었다. 그가 그린 14점은 모두 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새카만 검정에서 짙은 가지색까지 미묘하게 다른 색이다.휴스턴 채플은 1971년 정식으로 문을 열었지만 로스코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1970년 2월 25일, 그는 뉴욕 작업실에서 66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번 전시의 마지막 방은 휴스턴 채플과 똑같은 모양인 팔각형 모양으로 꾸며졌다. 그가 죽기 직전에 그린 ‘블랙 앤드 그레이’ 연작이 관객을 가만히 둘러싼다.

산마르코 수도원에는 안젤리코의 벽화와 함께 로스코의 같은 색 그림이 걸렸다. 이를 통해 전시는 로스코의 추상화가 600년 전 안젤리코의 종교화처럼 색을 통해 사람을 명상으로 이끌고 그림 안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미켈란젤로가 만든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입구에는 로스코의 작은 수채화 두 점이 걸렸다.
피렌체라는 도시가 로스코의 작품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게 이번 전시의 해석이다. 설득력은 충분하다. 600년 전 종교화 옆에 20세기 추상화를 나란히 걸어둔 전시 방식 덕분이다. 안젤리코의 색과 로스코의 색이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 두 거장은 하나로 연결된다. 세 장소는 도보 30분 이내에 돌아볼 수 있다. 한 곳만 가야 한다면 산마르코 수도원을 택하자. 좁은 방 안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미국의 20세기 추상이 나란히 놓인 광경. 그 한 컷만으로도 피렌체까지 간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다. 전시는 오는 8월 23일까지.

피렌체=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