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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아비뇽, 49년째의 SIFA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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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아비뇽, 49년째의 SIFA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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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5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최고 공연 행사인 ‘싱가포르 국제예술축제’. 1977년에 시작돼 올해로 49년째를 맞았다. 각국을 대표하는 공연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아시아 예술 애호가들이 2주간 이곳에 모여들었다.




    싱가포르 국제예술축제(Singapore International Festival of Arts, SIFA)가 지난 5월 15일부터 30일까지 열렸다. 유럽에 에든버러 페스티벌과 아비뇽 페스티벌이 있다면, 아시아에는 싱가포르 국제예술축제 SIFA가 있다.

    싱가포르는 다문화의 나라다. 1965년 독립 이후 중국·말레이시아·인도 출신의 사람들이 이룬 새로운 국가로, 포용과 조화를 중시한다. SIFA에서도 그런 정신을 이어받아 다민족이 결합한 싱가포르 현지 작품뿐 아니라 싱가포르와 해외 협업 작품, 해외 초청 작품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SIFA 2026에서는 커미션 작품 12편과 현지 예술가와 해외 예술가가 협력해 제작한 하이브리드 작품 4편을 포함한 총 21편의 싱가포르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해외 초청작 11편도 공연했다. 한국 국립극단이 올해 처음 초대받아 이혜영의 <헤다 가블러>를 선보였다. 한국 배우가 등장하는 작품도 두 편이 더 있었다. 대부분의 공연에는 자막이 있어 진정한 코스모폴리탄 축제를 보여주었다.

    이 기간 도시 전체는 축제 분위기다. 빅토리아극장 같은 전통적 극장뿐 아니라 아트하우스 앞 잔디밭에 설치한 페스티벌 빌리지, 풍골 디지털 지구에서도 공연이 열리기 때문이다. 페스티벌 빌리지는 빅토리아극장과 싱가포르강, 싱가포르 국립 현대미술관에 둘러싸인 작은 광장에 들어서 밤마다 무료 공연이 펼쳐진다. 푸드 트럭과 테이블도 준비돼 무더위가 지난 저녁 시간에 야외로 나온 사람들에게 공연을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SIFA는 내년 50주년을 앞두고 청쯔젠(Chong Tze Chien) 페스티벌 감독에게 올해부터 2028년까지 3년의 임기를 부여했다. 그는 “함께 즐겨봐요(LET’S PLAY)!”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유산(Legacy)’, ‘뿌리(Roots)’, ‘르네상스(Renaissance)’를 중심으로 3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SIFA의 다문화 프로그램은 지역의 다양한 재능을 연결하고, 예술계 리더들과의 활발한 국제 교류를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또한 ‘다문화 미래: 초국가적 창작 싱크탱크’와 ‘과거, 현재, 미래: 토크’ 같은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다문화 미래: 초국가적 창작 싱크탱크’는 한국 국립극단 청년 연출가 프로그램, 홍콩예술제(Hong Kong Arts Festival) 노 리미츠(No Limits) 플랫폼, 그리고 싱가포르의 신진 예술가를 한데 모으는 3년 플랫폼이다. 레지던시, 랩, 협업 실험을 통해 장기적 관계를 구축하고 창작 활동을 공유하는 데 중점을 둔다.

    ‘과거, 현재, 미래: 토크’는 축제가 문화 전시 공간에서 만남, 성찰, 교류를 위한 시민 공간으로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또한 앞으로 어떻게 지역사회를 형성하며 예술적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포럼이다.


    특히 싱가포르 공연 예술의 주목할 만한 점은 1980년대 중반에야 비로소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예술계가 불과 몇십 년 만에 완전한 예술 생태계로 발전했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를 수 세대, 심지어 수세기에 걸쳐 구축해온 만큼 더욱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싱가포르 문화는 결코 모방에 그치지 않는다. 싱가포르 문화는 동남아시아적 감수성을 토대로 형성되어왔으며, 새로운 시민과 이민자 공동체에 의해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있다. 싱가포르의 문화 교류는 수입된 개념이 아니라 일상의 근간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이는 싱가포르 예술계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계속 진화하는 독특함을 부여했다. 학제 간 연구, 다양성, 사회 참여적 실천 같은 세계 공연 예술 트렌드와 공통점이 분명 있지만, 싱가포르의 이러한 발전은 이론이나 유행이 아닌 삶의 현실에서 비롯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올해 SIFA에서는 세 편의 작품에 한국 예술가들이 출연했다. <헤다 가블러>, <마지막 의식>, <위 리브 히어>가 그것. ‘국민 아빠’ 정동환 배우는 SIFA와 인연을 맺은 지 오래다. 그는 10여 년 전 연극 <레이디 맥베스>로 싱가포르 공연에 참여한 바 있는데, 최근에야 그것이 SIFA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당시 공연을 보고 감동받은 류샤오이(Liu Xiaoyi) 감독이 그의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2년 전 그를 새로운 작품 <마지막 의식>에 캐스팅했다. 그렇게 초연에 참여한 정동환 배우가 이번에 두 번째로 함께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 의식> 무대에 오르는 배우는 한국, 인도네시아, 일본, 싱가포르 등 평균연령 74세인 5명의 노장들이다. 이들은 한 달 전부터 싱가포르에 머물며 젊은 연출가와 함께 매일 리허설을 진행했다고. 다섯 배우는 각자의 모국어로 연기했으며, 무대 뒤편에 자막이 제공됐다. 그들의 과거 사진이 화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대본은 모두 100% 실제 상황. 배우들이 자신의 예술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감독이 그대로 대본에 담았다. 정동환은 연극으로, 남경호는 마임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했다.



    헨리크 입센의 고전을 재해석한 <헤다 가블러>의 주역 이혜영 역시 이미 싱가포르에서는 잘 알려진 배우다. 이 작품은 헤다가 단조로운 일상, 갈망과 통제, 자기 파괴 사이의 긴장 속에서 겪는 내면의 갈등과 욕망, 그리고 무너져가는 과정을 탐구한다. 이혜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친숙하게 느껴지는 관계와 선택에 의해 형성된 인간적 존재로서 그녀를 바라보도록 이끌었다.

    페스티벌 빌리지에서 열린 리셰(싱가포르)와 이호영(한국)의 <위 리브 히어>는 생체역학과 라반 동작 분석을 결합해 신체극의 경계를 넓히고,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움직임 기반 공연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삶의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여정을 몸으로 보여준다. 관객들도 움직임과 춤에 함께 참여했다.

    ◆ SIFA 하이라이트 7

    1. 서커스와 무용의 조화, <놀리 티메레(Noli Timere)>

    이런 아름다운 작품을 공짜로 매일 밤 볼 수 있다니! 서커스와 현대무용을 결합한 넌버벌 공연이다. 구겐하임 펠로십 수상자인 연출가 레베카 레이저와 조각가 자넷 에첼만이 5년간 협업한 결과인 <놀리 티메레>는 거대한 그물 조형물에서 8명의 무용수가 춤을 추는 공중 퍼포먼스다. 무용수들은 최대 7.6m 높이의 공중에 매달려 상호작용을 보여줬다. ‘놀리 티메레’는 라틴어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



    2. 중국 배우는 왜 금발 가발을 썼나? <세일즈맨의 죽음(Salesman之死)>

    1983년, 마릴린 먼로와 결혼하며 더욱 유명해진 아서 밀러가 중국으로부터 특별한 제안을 받았다. 중국에서 그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출해달라는 것. 중국어를 못하는 아서 밀러와 영어를 못하는 중국 배우들이 통역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좌충우돌 리허설이 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다. 통역을 맡은 선후이후이 교수는 서로를 배려해 우회적으로 의견을 전하고, 문화대혁명을 막 벗어난 중국 배우들은 미국 현실을 담은 희곡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상황이 점점 복잡해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싱가포르의 다문화를 연상시킨다.



    3. 중력을 거스르며, <템포(Tempo)>

    마술사 칼레 니오가 연출하고, 페르난도 멜로가 안무를, 사물리 코스미넨이 음악을 맡은 마법 같은 작품. 시간과 중력이 멈춘 듯한 배우들의 움직임은 지구의 법칙을 무시하기에 관람객을 놀라게 했다. 멋진 대사나 특별한 장치가 없어도 모두를 매혹시킬 수 있음을 보여줬다.



    4. 별 보러 가자, <라이트 하우스(The Lighthouse)>

    남녀노소 동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랑스러운 작품. 우주비행사가 어둠 속으로 안내하면서 공연은 시작된다. 관객은 배우들의 안내에 따라 공연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몰입한다. 빛과 소리, 원근법과 반사를 이용한 공연이기에 마치 우주에 여행 온 것 같은 환상에 빠지게 된다.



    5. 신경쇠약 직전의 그들, <라크리마(LACRIMA)>

    영국 공주의 웨딩드레스 제작이 비밀리에 시작되며 신경쇠약에 빠진 패션계를 그려내는 흥미로운 작품. 정통 연극과 더불어 무대 스크린으로 파리, 알랑송(Alencon), 뭄바이의 장인들이 화상회의를 나누는 장면을 실감 나게 담아내며, 주인공들의 얼굴 클로즈업이 더욱 생동감을 전한다. 저명한 연극 연출가 캐롤라인 길라 응우옌이 21세기 패션 산업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은유한다.



    6. 마리나 베이도 식후경, <마칸 컬처(Makan Culture)>

    페스티벌 빌리지의 야외 미니 극장에서 열리는 작품. 관람객은 공연에 집중하기 위해 헤드셋을 쓰고, 싱가포르 스타일 도시락을 먹으며 작품을 경험할 수 있다. 이 작품의 매력은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연이 시작하면 싱가포르 음식과 예술을 주제로 토론이 벌어지는데, 관객은 대본을 읽어주거나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하며 흥을 돋운다.



    7. 장애 예술과 다양성, <햄릿(Hamlet)>

    SIFA는 장애 관람객의 편의를 고려하는 것을 넘어, 장애 창작자가 참여하는 ‘장애 예술’과 ‘다양성’ 반영에도 적극적이다. 이는 이번 SIFA에 한국 국립극단이 워크숍으로 참여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햄릿>은 다운증후군이 있는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작품을 재해석한다. 존재할 것인가 존재하지 않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다운증후군으로 일상에서 존재를 존중받기 어려운 이들의 욕망과 좌절을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



    싱가포르=이소영 프리랜서 미술 기자

    ▶▶▶[관련 인터뷰] 50주년 앞둔 SIFA, "포용의 실험 계속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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