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인정 vs 법해석, 재판의 두 단계
법률가들은 재판을 '증거를 통해 사실을 인정하고, 관련 법령을 해석한 뒤 인정된 사실에 법령을 적용해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 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일반인 입장에서는 이 말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특히 비슷해 보이는 사안에서도 판사마다 결론이 달라진다거나 판사의 가치관이나 철학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는 점은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재판에서 판사의 성향이나 가치관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렇기에 대법관 구성이 왜 중요한지 설명할 때 재판을 운동경기에 비유하고는 한다.
배구나 테니스처럼 상대 진영으로 공을 넘겨 공이 상대 코트 안에 떨어지면 득점이 되는 경기를 떠올려 보자. 그런데 경기 도중 공이 라인 선상에 애매하게 떨어져 득점인지 아웃인지 논란이 생긴 상황을 가정해 본다. 이때 경기의 규칙을 상세하게 적어놓은 규정집이 바로 법령이고, 그중에서 ‘공이 코트 안에 떨어지면 득점이고 밖에 떨어지면 실점’이라는 조항은 이 사건에 적용될 규정에 해당한다.하지만 이 규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이 실제로 어디에 떨어졌는지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공이 라인에 전혀 닿지 않고 코트 안에 떨어졌는지, 아니면 일부가 라인에 걸쳤는지, 닿았다면 어느 부위에 어느 정도 닿았는지를 가리는 과정이 바로 '사실인정' 절차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 여러 위치에서 당시 상황을 지켜본 관중들의 증언을 듣거나, 녹화 영상을 재생하는 방식 등의 조사가 이루어진다. 결국 공이 라인에 닿았는지, 어떻게 닿았는지에 관한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그래서 비디오 판독 등 조사 결과 폭 5cm인 라인 안쪽 3분의 1 지점에 공이 닿은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하자. 이것으로 일단 사실관계는 정리되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규정'에 대한 법관의 '해석'
규정에는 단지 '코트 안에 들어오면 득점'이라고만 정해져 있을 뿐, '코트 안'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공이 라인에 전혀 닿지 않고 안쪽으로 떨어져야만 '안'이라는 것인지, 일부가 안쪽에 닿으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라인 밖에 조금이라도 걸치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물론 그런 부분까지 미리 정해 놓았다면 좋겠지만, 실제 법은 그렇게까지 세밀하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이 단계에서 다양한 해석론이 등장한다. 규정의 문언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 규정의 취지를 고려해 목적론적으로 해석야 한다는 입장, 다른 경기의 규정이나 선례를 유추하여야 한다는 입장 등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 있다. 그런데 문언 해석을 따르더라도, 라인이 코트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따라 '코트 안'의 범위는 또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목적론적 해석 단계에 이르면, 심판의 가치관과 철학이 본격적으로 개입하며 그에 따라 결론이 상당히 달라진다. 경기의 박진감과 공격의 재미를 중시하는 심판이라면 가급적 득점을 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즉 라인도 코트의 일부이며 공이 라인에 조금이라도 닿으면 코트에 들어온 것이라고 해석할 것이고, 이는 수비 측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반대로, 보다 정교한 공격과 수비의 완성도를 중시하는 심판이라면 가급적 아웃의 범위를 넓히는 쪽으로 해석하려 할 것이고, 이는 공격 측에게 상당한 부담이 된다.
재판도 다르지 않다. 공이 라인에 닿았는지 여부에 관한 사실인정은 하급에서 정리된다. 대법원은 그 사실을 전제로 어디까지를 득점 범위에 포함시킬 것인지에 관한 해석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최종 해석을 내리는 법관의 성향에 따라 때로는 공격수에게, 때로는 수비수에게 유리한 결론이 내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최종적인 법해석을 내리는 법관의 가치관과 성향에 따라 개인의 자유와 능력에 더 무게를 두는 판단이 내려지기도 하고, 평등과 공공성을 더 강조하는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노사관계에서는 사용자와 노동자를 바라보는 가치관에 따라 균형점이 달라지기도 하고, 조세 영역에서는 국고를 중시하느냐 개인의 재산권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국가와 납세자 사이에서 무게추가 이동하기도 한다.
대법원 구성의 '균형성'
그래서 최종심 법원은 특정 방향으로 기울지 않도록 좌에서 우까지 다양한 가치관과 철학을 가진 법관들로 균형 있게 구성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법적 안정성 또한 중요하다. 한 번 확립된 해석이 그 구성 변화에 따라 쉽게 뒤집힌다면, 당사자들은 예측 가능성을 상실하고 그 결과 법 자체에 대한 신뢰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만약 심판들이 특정 성향으로 편중되어 구성되거나, 정치적 입장에 따라 기존 해석이 쉽게 변경되거나, 합의를 통한 최종적인 결론 도출이 어려운 구조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경기는 더 이상 선수가 주인공이 되는 공정한 경쟁의 장이 아니라, 심판에 따라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정한 도박이 되고 말 것이다.
미국에서는 연방대법관이 종신직이기 때문에 한 번 잘못 임명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종신직이기 때문에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아도 임기 내에 대법관 구성을 크게 변경하지 못해 장기적인 법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서로 다른 가치와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면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구조, 그것이 법원이 지향해야 할 모습일 것이다. 최근 대법원 구성에 관한 논의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제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그 결과로 달라지는 대법원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보다, 다양한 가치가 긴장 속에서 공존하는 구조가 되기를 기대한다. 법이 하나의 '경기 규칙'으로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법원에 대한 신뢰는 정답보다 균형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