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마포구 대흥동의 한 카페. 카페 영업시간이 끝났지만, 노트북, 태블릿PC 등을 들고 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인다. 모인 사람은 총 8명. 각자 간단한 자기소개와 오늘 할 일 목표를 소개한 뒤, 바로 업무에 몰입한다. 모르는 사람끼리 모여 각자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 '어드민 나이트(Admin Night·행정 업무의 밤)' 모임이다.
밤에 술자리 대신 각자 할 일을 하는 모임, 어드민 나이트를 선택하는 2030이 늘어나고 있다. 미라클 모닝 등 주로 아침에 이뤄졌던 '갓생' 문화가 밤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특히 2030은 효율성과 성취감을 얻기 위해 혼자보다 다수, 깊은 관계보다 가벼운 관계를 찾는 '느슨한 모임'을 찾았다. 전문가는 고맥락 커뮤니케이션이 요구되는 한국 집단 중심 문화화 MZ세대를 필두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카페서 혼자면 다 못 끝내요"…서로 '느슨한 감시자'되는 2030

이날 어드민 나이트에 모인 이들은 직업도, 나이도 다양했다. 2000년생부터 1992년생, 올해 직장에 들어간 사회초년생, 자영업자, 콘텐츠 기획자, 퇴사자도 있었다. 공통점은 2시간 30분 동안 할 일을 끝내기 위해 모였다는 점이다. 이날 마무리하지 못한 직장 업무, 날아간 데이터 복구, 사업 계획, 시 쓰기 등 계획도 다양했다.
이들이 카페가 아닌 어드민 나이트를 찾은 이유는 효율성이 컸다. 혼자 카페나 도서관에 가서는 계획만큼 목표치를 달성하기 어려우나 모임에서는 서로 '느슨한 감시자'가 돼, 딴짓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날 사업 방향 계획, 루틴 정하기 등을 목표로 어드민 나이트에 참여한 류채은(33) 씨는 "목표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 150% 정도 성취한 것 같다"며 "저녁에 카페에 가서 할 일을 하려고 해도 피로해서 잘 안 가게 되고, 가도 집중이 잘 안 되는데 맘에 들지 않던 일상의 쳇바퀴를 이번 모임을 통해 멈춘 거 같아 맘에 든다"고 말했다.
낯선 이들과 함께 해 익명성이 보장되는 측면도 이점으로 작용했다. 일을 그만두고 잠깐 쉬고 있는 조모(32) 씨는 이날 문예 대회에 참여할 시를 쓰고, 사진 전시회 초대장 등을 준비했다. 조씨는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라 다른 의미로 더 편안했다"며 "친구들한테는 시 쓴다고 말 못할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류씨 또한 "아는 사람이면 할 일을 못 지켜도 될 거 같은데 모르는 사람끼리니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라"라고 전했다.
2030세대의 어드민 나이트 관심도는 검색량 추이로도 확인된다. 키워드 분석 플랫폼 블랙키위에 따르면 '어드민 나이트' 월별 검색 비율은 달마다 우상향을 그리고 있다. 1월 당시 검색 비율이 3.9%에 그쳤으나 2월 34.1%, 3월 62%로 증가했다. 연령별 검색 비율도 20대 41%, 30대 39.6%로 2030에 몰려있다.
경찰과 도둑·감자튀김 모임 등…느슨한 관계 추구하는 2030

어드민 나이트를 기획하는 2030은 느슨한 관계라 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1월부터 3월까지 어드민 나이트를 기획했던 김연주 제작 프로덕션 그룹 '생산직' 대표는 "목적 없이 익명성만 보장된 모임은 이상한 사람이 올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기 쉬운데 어드민 나이트의 경우 각자 목표를 갖고 온 사람들이 모여 오히려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며 "교류보다 각자 할 일에 집중하니 내향적인 분들도 부담 없이 오시고, 다시 신청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2030세대가 느슨한 관계를 추구하는 건 어드민 나이트가 처음이 아니다. 당근마켓에서 시작된 '도둑과 경찰'·'감자튀김' 모임 또한 익명의 사람들이 목적을 가지고 만나는 모임에 해당한다. 관계를 유지하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함께 이룰 수 있는 사람을 그때그때 만나는 만남이 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는 이러한 2030의 소통 방식이 고맥락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하는 한국 집단 사회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으로 해석했다. 고맥락 커뮤니케이션은 인류학자 에드워드 T.홀이 제시한 개념으로 관계·상황 같은 비언어적 요소가 중요한 소통 방식을 의미한다. 집단을 중시하는 기존 한국 사회와 자신을 중시하는 2030세대가 충돌하면서 나타나는 문화적 변화라는 의미다. 목적에 맞는 짧은 만남은 고맥락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저맥락 커뮤니케이션을 요해 상대적으로 피로감이 덜하다는 것이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는 상황이나 눈치껏 상대방의 메시지를 이해해야 하는 고맥락 문화"라며 "기성세대들은 화합, 단체를 중시하지만 현재 젊은 세대들은 나, 자신이 중요하다. 그러는 동시에 인간 본능상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 목적에 부합할 수 있는 관계, 만남을 추구하는 새로운 문화가 한국 사회에도 등장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허 교수는 "관계가 깊어지다 보면 정서적인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이런 감정 비용 부담 또한 2030세대들이 느끼면서 관계를 맺기보다 필요한 것만 채택하고 가져가는 경향이 보인다. 관계에 있어서도 합리적이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