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15년 전 일이네요. 2011년 세계적 투자가 워런 버핏이 자신의 투자 기업인 대구텍을 방문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자들이 그의 동선을 따라 구름처럼 몰려 다녔습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운 좋게 잠시 그와 따로 마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당시 그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던 한경비즈니스를 건네며 사진 촬영을 요청했습니다.
버핏의 대답은 짧았습니다.
“No. This is business.”
단칼에 거절당했지만 이상하게도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사고방식이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다른 미디어를 홍보하는 데 자신의 얼굴을 쓰지 않겠다는 판단을, 그는 1초도 안 돼 끝냈습니다. 감정도 분위기도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원칙만 남긴다는 태도였습니다.
제가 만난 많은 부자들은 공통적으로 거절을 잘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탁을 받는 순간 주저합니다. 관계가 틀어질까, 기회를 놓칠까 고민하죠. 그러나 선택지가 많은 사람은 망설이지 않습니다. 그 차이는 성격이 아니라 조건에서 비롯됩니다.
한국에서 100만 부나 팔려나간 ‘세이노의 가르침’은 이 지점을 정확히 짚습니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가난한 상태에 머물려는 태도는 스스로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말합니다. 그는 준비된 자본이 있어야 하기 싫은 일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자본은 소비를 위한 수단이기 전에 선택과 거절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입니다.
동서양의 만남일까요. ‘돈의 심리학’의 저자 모건 하우절 역시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는 “부유함의 진정한 가치는 매일 아침 ‘오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했습니다. 돈은 더 많은 것을 하게 만들기보다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줄여줍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시간을 돌려줍니다.
돈의 본질적인 가치는 ‘시간을 사는 능력’에 있다고 봅니다. 불필요한 대기 시간을 줄이고, 저부가가치의 반복 노동을 외주화하고, 중요한 판단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만드는 자원입니다. 그렇게 확보한 시간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는 데 쓰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저녁을 보내는 데 쓰일 수도 있습니다.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이 “돈은 꽃보다 아름답다”고 한 말도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 제대로 다뤄진 돈은 한 개인의 삶을 불안과 궁핍의 그림자에서 끌어내 더 넓은 가능성으로 옮겨 놓습니다. 돈은 삶을 꽃피우는 에너지입니다. 돈을 두려워하거나 숭배할 것이 아니라 다룰 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위기와 기회가 뒤섞인 2026년 현재 한국의 경제 상황은 이 논리를 냉혹하게 증명합니다. 최근 몇 년간 내수 부진, 보호무역주의 확산, 환율 급등이 한꺼번에 밀어닥치자 자본 여력이 없는 기업들은 인력부터 줄이는 수세적 생존 모드에 돌입했습니다. 올해도 역시나 힘든 상황입니다. 반면 몇몇 기업들, 특히 반도체와 방위산업에 속한 기업들은 준비된 자본을 무기 삼아 선제 투자를 했고, 현재는 글로벌 수주를 쓸어담으며 주가와 실적 모두 고공행진 중입니다. 같은 폭풍 속에서도 누구는 재난을 맞았고, 누구는 기회를 잡은 겁니다. 결국 돈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파도에 휩쓸리고, 제대로 읽으면 그 파도 위에 올라 탄다는 얘깁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경제주간지의 역할이 있습니다. 경제주간지는 파도를 미리 읽게 해주는 나침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경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 쉽게 말해 돈을 더 벌고 싶은 독자가 경제 뉴스를 찾을 겁니다. 지상파 TV뉴스나 종합일간지에서 경제 뉴스를 접한 후 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어서 한국경제와 같은 경제 일간지를 구독하겠죠. 여기에 한경비즈니스와 같은 경제주간지까지 읽고 계신다면 보통의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경제 정보에 대한 갈증이 크신 분들일 겁니다.
그래서 한경비즈니스는 그만큼 수준 높은 독자들의 필요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증권 시황이나 부동산 대책 너머, 그 이면에 숨겨진 비즈니스 인사이트와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짚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표지에 내세우는 ‘커버스토리’처럼 큰 기사가 아니라 ‘비즈니스 플라자’와 같은 단신 기사에라도 독자들이 어떤 깨달음을 얻어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을 만듭니다. 그게 투자에 대한 판단이든 경영의 방식이든 간에 실패의 비용을 줄이는 방패가 되고, 10년 후를 내다보는 지름길이 됐으면 합니다.
어쩌다 보니 한경비즈니스의 새 편집장이 됐습니다. 앞으로 한경비즈니스가 전하는 지식이 여러분의 자산을 지키는 성벽이 되고, 새로운 기회로 향하는 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한경비즈니스를 탐독하는 시간은 단순히 정보를 소비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자신의 자산을 더 가치 있게 일구어 미래의 자유를 앞당기려는 가장 적극적인 ‘투자’의 시간일 겁니다.
아. 워런 버핏이 당시 깔끔하게 거절한 이유가 있긴 합니다. 그는 당시에도 뉴욕타임스의 대주주였습니다. 특히 작년 은퇴하면서 한 마지막 대규모 투자가 뉴욕타임스의 주식을 더 사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경쟁사의 소유주였던 거죠. 어찌 보면 당연한 거절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