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과의 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세를 잠재우려 러시아 원유 제재를 일시적으로 해제했다. 미국은 최근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국에 대규모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는 등 관련 압박을 강화했다. 이번 해제 조치의 유효 기간은 한 달이지만 전쟁이 길어지면 연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12일(현지시간) 조건을 충족하는 러시아산 원유의 판매 승인 조치를 발표했다. 지난 11일까지 선박에 실린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 등의 거래를 다음달 11일 0시1분까지 허용하는 내용이다. 베선트 장관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SNS에 적었다.
전쟁 발발 이후 호르무즈해협이 2주간 사실상 봉쇄된 가운데 유가는 다시 100달러대로 돌아갔다. 브렌트유 선물(5월 인도분) 가격은 이날 배럴당 100.46달러로 마감했다.
지난주 인도에 대해 러시아 원유 수입 관련 제재를 면제한다고 발표한 미국은 이날 면제 대상을 전 세계로 넓혔다. 러시아는 1억 배럴가량을 유조선(탱커)에 담아 바다에 띄워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모든 국가가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과 비슷한 규모다. 에드워드 피시먼 미국외교협회(CFR) 지경학연구소장은 “러시아에 그동안 가해진 거대한 압박을 한 방에 무효화하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유럽은 이 같은 조치에 동참하지 않고 제재를 지속하기로 했다.베선트 장관은 “운송 중인 석유에만 적용되는 제한적이고 단기적인 조치로, 러시아 정부에 재정적 이익을 크게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러시아가 전쟁의 최대 승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 정부가 전쟁 발발 이후 원유 수출세로 약 13억~19억달러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는 유가 급등에 따른 물가 상승과 민심 이반을 방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필수적 에너지 제품과 농산물이 자유롭게 미국 항구에 유입될 수 있도록 존스법을 한시적으로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존스법은 미국 항구 사이에서 상품을 운송할 때 미국인이 소유한 미국 건조 선박을 이용하도록 규정한 법안이다.
한국 정부도 국내 기업들과 함께 러시아 원유 수입이 가능할지 검토하고 있다. 미국이 제재를 일시적으로 풀어주더라도 기존 제재에 따른 제약이 많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국제 금융결제 네트워크인 스위프트망 제재를 우회할 수 있도록 외국환 관련 규정부터 손봐야 한다. 글로벌 보험사들이 러시아산 원유를 실은 선박에 대해 선주책임보험 가입을 허용할지도 미지수다.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가 (유가 안정을 위해) 시장에 개입하려는 조치 같다”며 “러시아 원유를 들여오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김대훈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