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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잃는 게 더 나으리라 [고두현의 아침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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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잃는 게 더 나으리라 [고두현의 아침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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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고 잃는 게 더 나으리라
    앨프리드 테니슨

    난 부러워하지 않네, 어떤 감정 상태에서도
    고결한 분노를 상실한 포로와
    새장 속에서 태어나
    여름 숲을 전혀 경험한 적 없는 방울새를.


    난 부러워하지 않네, 시간의 들판에서
    제멋대로 살아가며
    죄의식에 얽매이지 않고
    양심이 한 번도 깨어난 적 없는 짐승을.

    부러워하지 않네, 스스로 복되다 여길지라도
    사랑의 서약을 해 보지 않은 가슴
    나태의 잡초 속에 갇혀버린 마음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갖게 되는 휴식을.


    난 진실로 믿네, 무슨 일이 닥치든
    가장 깊은 슬픔 속에서도 느끼네.
    사랑하고 잃는 게
    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

    영국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의 유명한 시입니다. 이 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사랑하고 잃는 게/ 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마지막 구절이지요. 이 애틋한 문장 뒤에는 한 남자의 청춘을 송두리째 앗아간 상실과 17년 동안 이어진 애도의 서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야기의 첫 무대는 1829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입니다. 내성적인 기질의 청년 테니슨 앞에 사교성 좋고 두뇌가 명석한 아서 헨리 핼럼(Arthur Henry Hallam)이 나타납니다. 둘은 순식간에 서로를 알아봤습니다.

    핼럼은 테니슨의 시적 재능을 가장 먼저 발견한 지지자였고, 테니슨은 그런 핼럼을 “나의 절반”이라고 불렀습니다. 핼럼이 테니슨의 여동생 에밀리와 약혼하면서 두 사람의 우정은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그들에게 미래는 찬란한 금빛이었지요.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1833년 가을, 핼럼이 아버지와 함께 빈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뇌출혈로 급사하고 말았습니다. 고작 스물두 살이었지요.

    영국에 있던 테니슨에게는 세계가 멸망한 것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핼럼의 시신이 배에 실려 영국해협을 건너오는 동안 파도처럼 몸을 던지며 절규했습니다.


    그로부터 17년 동안 그는 세상을 등지고 은둔했습니다. 외부 활동을 중단한 채 오직 죽은 친구를 향한 시편들을 써 내려갔습니다. 그것이 훗날 영문학의 금자탑이 된 시집 <아서 헨리 핼럼을 기리며(In Memoriam A.H.H.)>입니다.

    시집의 초반부는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지옥 같은 고통도 없었을 텐데’라는 후회가 그를 짓눌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친구와 함께한 짧은 기억이 지금의 고통보다 더 고귀하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 처절한 자기 치유의 과정 끝에서 건져 올린 문장이 “난 진실로 믿네, 무슨 일이 닥치든/ 가장 깊은 슬픔 속에서도 느끼네./ 사랑하고 잃는 게/ 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입니다.

    1850년에 발표된 이 시집은 영국 전역을 뒤흔들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남편 앨버트 공을 잃고 실의에 빠졌을 때 이 시집을 읽으며 “성경 다음으로 위안을 얻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테니슨은 이 시집으로 계관시인이 됐습니다.

    얼마 후, 여왕은 계관시인 테니슨을 궁으로 불러 남편을 잃은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테니슨은 “우리에게 남은 슬픔은 우리가 그를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러니 그 슬픔조차 사랑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여왕은 그를 귀족(남작)으로 봉하며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한 시인의 개인적인 상실이 대영제국 여왕의 상실과 만나 온 나라를 어루만지는 치유의 꽃으로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1892년, 테니슨이 8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 그의 머리맡에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집과 함께 핼럼의 이름이 적힌 원고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이제 드디어 바다를 건너 그를 만날 준비가 되었노라.” 그에게 죽음은 또 다른 상실이 아니라 60년 전 잃어버린 영혼의 단짝과의 재회였습니다.

    핼럼의 약혼녀인 에밀리는 어땠을까요. 그녀는 9년 동안 검은 상복을 벗지 않았고, 핼럼이 죽은 곳을 향해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여동생을 보면서 테니슨은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자신의 시가 동생의 상처를 다시 헤집는 소금이 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지요. 하지만 시집이 완성될 무렵 에밀리는 오빠의 시에서 ‘슬픔의 출구’를 발견했습니다.

    훗날 에밀리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로 결심했을 때, 테니슨은 그녀의 선택을 지지하며 지나간 시간이 ‘상실’보다 ‘축복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고 잃는 게 더 낫다”는 선언은 동생 에밀리에게 건네는 가장 아픈 위로이자, 비로소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는 마법 같은 주문이었습니다.

    테니슨은 새장 속의 새나 들판의 짐승처럼 상처 없는 존재를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사랑을 잃고 지독한 슬픔에 잠겼을지언정 그 상실의 고통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장 큰 아픔을 통해 체득했기 때문이지요.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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