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주가는 작년 10월 말 사상 최고가인 212달러를 기록한 뒤 5개월 가까이 100달러대 후반에 머물고 있다. 인공지능(AI)을 앞세워 질주하던 기술주 다수가 마찬가지다. 이들의 공백을 메운 주식이 있다. 에너지·금속·광업 등 이른바 ‘구경제’ 주식이다. 프리포트맥모란, 리오틴토, 엑슨모빌 등은 작년 10월 말부터 20~50% 올랐다. 구리가 지난달 t당 1만4000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금과 은, 구리, 알루미늄, 원유, 천연가스 등 온갖 원자재 가격이 뛰고 있는 덕분이다. 원자재 급등…구경제의 복수
이를 ‘실물자산 부활’이라 부르든, ‘원자재 슈퍼사이클’이라 칭하든 원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자본이 신경제(신기술)로 몰리는 사이 한동안 구경제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던 것이다. 투자 부족이 누적되는 사이 수요 충격이 생기면 장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지난 70년 동안 나타난 두 차례의 대규모 자본지출 사이클 이후 원자재 슈퍼사이클이 뒤따른 건 우연이 아니다. 1960년대 ‘니프티 피프티’(대형주 중심 주가 상승세)가 지배했을 때 돈은 코카콜라, 맥도날드, IBM 등 브랜드를 가진 기업에 몰렸다. 그사이 구경제 투자는 소홀해졌고, 이어진 1968~1980년 원자재 가격은 치솟았다. 1990년대 중반 세계는 닷컴 붐에 빠졌고 모든 자본은 인터넷에 쏠렸다. 그리고 2002~2014년 원자재는 초호황을 누렸다.이번에도 비슷하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매그니피센트 7’으로 대표되는 기술주에 투자가 몰렸다. 이런 추세는 2022년 챗GPT 탄생과 함께 AI 붐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작년부터 원자재가 뛰고 있다. 칼라일은 이를 ‘구경제의 복수’라고 부른다.
칼라일에 따르면 원자재 슈퍼사이클은 가격 급등의 연속으로 이뤄진다. 일단 재고와 여유 생산능력이 고갈되면 가격은 뛴다. 너무 오르면 수요 파괴가 나타나는데, 이에 따라 가격이 내려간다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수요가 회복되면 또 오른다. 장기적 공급 문제가 투자로 해결될 때까지 이런 과정은 반복된다. 결국 해법은 충분한 투자다.
전향적 공급대책 필요
메모리 반도체 폭등 과정도 비슷한 구조다. 안토니오 네리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 최고경영자(CEO)는 AI 붐에 따른 수급 불균형이 직접적 원인이지만, 2022~2023년 수요 감소와 이에 따른 과소 투자가 근본적 배경이라고 지적한다.투자가 줄면 공급이 감소하고, 결국 가격이 오르는 현상은 부동산에서도 주기적으로 나타난다. 시장에서는 과거 문재인 정부가 공급 정책은 공공 임대나 소규모 정비 사업에만 집중하고, 공공 주도 및 규제 강화로 민간 재건축·재개발을 위축시킨 걸 최근 집값 급등 원인의 하나로 꼽는다. 이재명 정부의 대출 규제, 보유세 강화, 투기과열지구 확대 등도 단기적으로 집값 급등세를 잡을 수는 있겠지만 동시에 개발 투자와 공급 의지를 꺾을 수 있다.
투자 감소는 당장 문제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몇 년 뒤 주택 공급이 줄면 상승 압력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도권 135만 가구 공급 대책은 긍정적이다. 몇 년 뒤 ‘부동산 슈퍼사이클’을 막으려면 서울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등 공급 대책에 더 전향적으로 나서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