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개별 기업의 실적이나 차트 분석만으로는 시장의 방향성을 읽기 어려운 시대다. 투자 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글로벌 자산 관리 부문에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UBS에서 약 4조 달러(약 5800조 원) 자산을 총괄하는 마크 헤펠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신간 <투자의 새로운 규칙>을 통해 명확한 해법을 제시한다. 그는 과거의 가치 투자 방식이 흔들리는 원인을 ‘정부의 귀환’에서 찾는다. 국가가 시장의 단순한 관리자를 넘어 거대한 플레이어로 등장한 만큼, 이제는 기업이 아닌 정부 지출의 흐름을 따라가는 ‘하향식(Top-down) 투자’가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가장 먼저 주목하는 지점은 비대해진 정부의 역할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주요국의 정부 지출 규모는 비약적으로 커졌다. 미국의 경우 정부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35~40%를 차지하며 국가 경제의 3분의 1 이상을 직접 통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정부의 개입과 지출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됐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현재의 투자 환경을 결정짓는 다섯 가지 핵심 변수를 ‘5D’로 정의한다. △부채(Debt) △탈세계화(Deglobalization) △인구 구조(Demographics) △디지털화(Digitalization) △탈탄소화(Decarbonization)가 그것이다. 이 요소들은 개별 기업이나 민간 자본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다. 결국 정부가 천문학적인 예산을 어디에 투입하느냐에 따라 자본의 대이동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책이 제시하는 첫 번째 규칙은 명료하다. “정부를 따라 매수하라”는 것이다. 많은 투자자가 남들이 모르는 비공개 정보를 얻으려 애쓰지만, 저자는 오히려 가장 강력한 투자 기회는 모두에게 공개된 정책 속에 있다고 강조한다. 정부 예산안과 법안 확정 소식은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도되며, 그 영향력은 수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사례로 2022년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든다. 미 행정부가 에너지 인프라와 청정에너지 전환에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붓겠다고 공표했을 때, 시장의 향방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법안 시행 21개월 후 미국 인프라 개발 지수는 46% 상승했다. 복잡한 경제 지표를 예측하려 애쓰지 않아도, 정부의 정책 의지만 제대로 읽었다면 충분히 누릴 수 있었던 수익이다.
그는 워런 버핏식 가치 투자, 즉 수익 잠재력 대비 저평가된 종목을 찾아 장기 보유하는 방식이 오늘날에는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시장의 효율성이 높아진 데다 정부의 개입이 상수가 된 상황에서는 개별 종목 선정보다 거시적 자산 배분이 훨씬 중요하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디에 주목해야 할까. 저자는 ‘1조 달러 규모의 기회’가 숨어 있는 세 가지 핵심 트렌드로 디지털화, 에너지 혁신, 헬스케어 혁신을 꼽는다. 이 영역들은 각국 정부가 사활을 걸고 인프라를 구축하며 보조금을 집중하는 곳들이다.
동시에 저자는 유동성과 안정성 사이의 균형을 강조한다. 단순히 유망 섹터에 집중 투자하는 것을 넘어, 전체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UBS만의 노하우를 전달한다. 거시적 안목으로 시장의 질서를 파악하게 함으로써, 최근과 같은 변동성 장세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투자 원칙을 제시한다.
이 책은 ‘무엇을 살까’를 묻기 전에 ‘어떤 질서 속에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라고 강조한다. 이제 투자는 기업 실적을 맞히는 게임이 아니라, 정부가 설계한 경제 지도를 읽는 일에 가깝다는 것이다. 예산이 집중되는 곳에는 새로운 부의 기회가 열리고, 규제가 강화되는 곳에는 위험이 도사린다. 저자는 말한다. “변화한 게임의 법칙을 이해하고 정부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라.”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