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6,307.27

  • 223.41
  • 3.67%
코스닥

1,188.15

  • 22.90
  • 1.97%
1/3

"中 빼고 우리끼리만 거래하자"…美 제안에 정부 '가시방석'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中 빼고 우리끼리만 거래하자"…美 제안에 정부 '가시방석'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미국은 핵심광물 12개를 100%, 29개는 50% 이상 수입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서명한 핵심광물·파생제품 수입 조정 문서에 요약된 미국의 현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서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을 단기간에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인정하며 “외국 무역 파트너와의 협정”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상무장관과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무역 파트너와의) 협상 과정에서 핵심광물 무역 가격하한제와 기타 무역 제한 조치를 고려하라”고 지시했다.


    미국이 핵심 광물 분야의 공급망 독립을 위한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목표는 두 가지다. 중국에 휘둘리지 않는 공급망을 구축하고, 이 과정에서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지난해 각종 관세정책을 통해 동맹을 압박해온 미국은 핵심 광물 분야에서 ‘대중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데 참여하라는 요구를 추가하고 있다. 미국은 나아가 중국 등과 일정 부분 거리를 둘 수 있는 ‘미국 중심의 경제 블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과 가까우면서도 산업적으로는 중국과 깊게 엮여 있는 한국은 곤혹스러운 처지다. 핵심광물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의 뿌리를 틀어쥐고 있는 중국에 휘둘리지 말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어 온 제조업의 기반을 완전히 재구성하는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이 구상하는 공급망 독립이나 이를 통한 제조업 활성화라는 비전의 현실성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공급망 협력체제 가속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이달 초 55개국과 함께 핵심광물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하는 ‘포지(FORGE) 이니셔티브’를 출범했다. 유럽연합(EU)과 한국 일본 등 주요 동맹국은 물론 DR콩고와 잠비아 우즈베키스탄 등 주요 광물 생산국이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원래 미국이 주도하던 광물안보파트너십(MSP)을 확대한 것으로, 한국이 오는 6월까지 의장국을 맡는다.

    미국은 앞서 ‘프로젝트 볼트(Vault)’도 시작했다. 60일치 핵심광물을 전략적으로 비축하겠다는 아이디어다. 미국 수출입은행(EXIM)이 120억달러 규모 자금을 댄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지난해 핵심 광물로 지정한 60개 광물이 모두 포함된다. 특정 광물이 부족해지기 전에 미리 광물을 사두고, 가격 급등이나 공급 중단 같은 시장 혼란기에 참여기업(국가)에게 물량을 풀겠다는 구상이다. 수수료를 받고 장기 보험을 제공하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동맹국이 다각화된 공급망 개발을 추진하는 동안 잠재적인 공급 차질에 대비할 수 있게 하는 완충장치”라고 평가했다. 미 국무부가 작년 12월 발표한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분야 공급망 협력 체제인 ‘팍스 실리카(Pax Silica)’도 같은 맥락이다.
    中, 시장경쟁 무력화

    미국은 중국이 시장경쟁을 무력화시킨다고 판단한다. 수십년 전부터 ‘통제할 수 없는’ 광산 단계보다는 중간 정제 및 가공 단계(미드스트림)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움직여 왔다는 것이다.



    예컨대 반도체 및 태양광 패널에 사용되는 저순도 갈륨은 99% 가까이 중국에서 생산 및 가공된다. 마그네슘은 95%, 텅스텐은 83%, 흑연은 79% 등이다. 미 지질조사국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중국은 데이터로 확인 가능한 44개 핵심광물 중 30개 품목에서 세계 1위 생산국”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중국이 단지 저가 생산을 잘해서가 아니다. 손해를 보는 구간을 버티면서 경쟁자를 시장에서 내쫓은 결과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지난달 말 미 싱크탱크인 애틀랜틱카운슬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중국이 시장 가격에 기반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고 수십 년에 걸쳐 그 계획을 일관되고 엄격하게 실행한 결과, 한국 일본 유럽 미국 등 대부분 국가의 구리 제련시설이 사라졌다”며 “이는 자유무역과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결과였다”고 말했다.


    예컨대 2011~2016년 구리 가격의 급락기에 중국이 제련소 건설을 오히려 늘린 것은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결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현재 구리 제련 이익은 1.5% 정도인데 이는 (민간 기업이) 새로운 제련시설 건설을 결정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이익이 거의 없는 투자를 하자는 결정은 이사회나 주주총회에서 통과되지 않는다는 자본주의의 특성을 중국이 악용했다는 얘기다.
    시장분리로 대응하는 美
    미국은 이런 중국의 덤핑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핵심광물 영역에서부터 ‘시장 분리’를 시도하고 있다. 작년 말 국무부가 ‘2026~2030 기관전략계획(ASP)’에서 동맹과 함께 “미국 중심의 경제 블록”을 구축하겠다고 한 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포지 이니셔티브, 프로젝트 볼트, 팍스 실리카 등은 모두 그러한 구상의 일환이다.

    제조업 부활을 꿈꾸고 있는 미국은 중국과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 등 동맹국에서 자금을 받아 시장성이 떨어지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품질이 낮고 가격이 비싼 제품에 대해서는 시장 수요가 생기지 않는다. 중국과 같은 나라들을 빼고 우리끼리 거래하는 별도 시장을 만들어 해결하겠다는 게 미국의 전략이다. 비싸더라도 서로 물건을 사주기로 약속하는 체제다.


    핵심광물 분야는 미국의 이런 구상을 본격화하기 위한 시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지난 4일 핵심광물 장관급 회의 개회사에서 J D 밴스 부통령은 “강제 가격 하한을 통해 외부 교란에서 보호되는 주요광물 무역지대”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그는 “가격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조정 가능한 관세를 통해 시행 가능한 최저 가격을 유지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가격을 더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변동성을 줄이자”고 제안했다.

    미국의 가격 하한제와 무역블록 아이디어에 동조한 것은 현재까지 일본, 멕시코, 유럽연합(EU)이다. 이들은 핵심 광물에 대한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을 약속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멕시코와 체결한 ‘핵심광물 행동계획’은 “국경 조정 가격 하한제 및 기타 조치로 뒷받침되는 핵심광물에 대한 조율된 무역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USTR은 이런 가격 하한제가 핵심 광물 무역에 관한 복수의 국가들 간 협정으로 어떻게 구체화할지를 추가로 협의하겠다고 했다. 제이컵 헬버그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은 지난 17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동맹들과 매우 복잡한 가격 하한제에 관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가공단계 中 독점 깨기 힘들어
    미국은 핵심 동맹국인 한국이 참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정부 내에선 고민이 깊다. 산업 관련 부처는 물론이고 외교부 내에서도 ‘무역블록 참여는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다’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산 저가 광물이 국내 기업의 공급사슬에도 깊이 엮여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등 각 분야에서 국내 제조업체들이 미국의 구상대로 가격 하한이 적용되는 핵심광물 무역 블록에 참여한다면 생산비가 급등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생산보다는 소비 위주인 미국이나 유럽과는 사정이 다른 부분이다. 관세와 가격하한제를 결합하면 소비자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높지만 비용을 모두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미국의 구상대로 가격 하한제를 도입해도 중·하류 부문에서 중국의 독점적인 지위를 깨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상류 부문(채굴) 단계에서는 광산을 확보해서 중국의 영향력을 점진적으로 줄일 수 있지만, 정제 및 가공 단계는 중국 기업을 대체할 무역블록 내 기업이 충분히 등장하기 전까지는 중국의 영향력이 유지될 전망이다. 만약 중·하류 부문에서 중국의 독점이 깨지지 않는다면 미국 중심 무역블록을 만들어서 하나의 상품에 대해 이중 가격을 설정해 거래하는 시스템은 유지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중국이 아예 거래하지 말자고 하면 방법이 없다.

    세계 각국과 교역을 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비전의 현실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미국이 이같은 구상을 계속 밀어 붙인다면 한국은 진퇴양난의 처지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실행도 까다롭다. 컬른 헨드릭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은 수백 종의 원자재, 가공품, 파생제품에 가격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체제가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도 필요하다. PIIE는 “트럼프 정부에 대한 신뢰 부족이 근본적인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무역블록 논의에 '진정성을 가지고' 참여하면서 틀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업들의 입장이나 국익을 반영할 수 있는 합의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정도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이해관계가 충분히 반영된다면 동참할 수 있지만, 현 단계에서는 선뜻 나서기는 어렵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가격하한 도입하자 치솟은 네오디뮴 가격
    중국의 핵심광물 시장 장악에 대응하기 위해 가격을 통제해서 대응하려는 미국의 전략과 관련해 참고할 수 있는 사례는 네오디뮴이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해 7월 캘리포니아의 희토류 생산업체 MP머티리얼즈에 4억달러를 우선주 인수 형태로 투자하면서 이 회사가 생산하는 희토류를 높은 값에 사 주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6~7월 무렵 네오디뮴의 가격은 ㎏당 60~70달러 선에서 오르내리고 있었는데, 미 국방부는 이를 ㎏당 110달러를 보장해 주기로 했다. 시가보다 높은 값을 쳐 주는 대신 초과이익이 날 경우에는 그 이익의 30%는 국방부가 다시 갖기로 했다. 이는 MP머티리얼즈가 중국산 희토류와 경쟁할 걱정 없이 생산하도록 하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MP머티리얼즈 투자자에게 ‘당근’을 제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네오디뮴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해 현재 약 110달러선을 형성하고 있다. 미중 관세전쟁 과정에서 희토류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미리 물량을 확보해 놓으려는 시장 수요가 몰린 데다, 중국이 생산량 증가 속도를 늦추면서 향후 공급물량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미국 정부가 구상하는 가격 하한제(비 중국산 물량에 대한 프리미엄 가격제)가 대부분의 핵심광물의 가격을 끌어올릴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산 물량의 가격도 함께 올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중국의 이익을 증가시킬 가능성도 있다. 특히 미국 등 비 중국산 생산물량이 가격 하한제 무역블록에 참여하는 국가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경우에는 더욱 그러한 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있다.

    미국은 이런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조정 가능한 관세 제도 등을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무역 블록 내에서 거래되는 중국산 물량에는 관세를 부과해서 중국산을 택하는 이점을 없애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공급 물량의 대부분을 중국이 틀어쥔 상황에서 관세 부담의 대부분은 중국이 아니라 블록 내 소비자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하지만 시장가격이 올랐더라도 가격이 다시 하락할 위험을 방어해 주는 효과가 있는 만큼 투자자와 생산자가 안정적으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이점은 여전하다. 김흥종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가격 하락 위험을 제거해 투자와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산업정책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중국에 단기적으로 이익이 있더라도 미국으로선 추진해야 하는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정부가 기존 정책을 대대적으로 뒤집은 전례가 있는 만큼, 미국 정부의 약속에 대한 말을 바꿀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미국 내무부는 정권 교체 시 정책이 뒤집힐 가능성에 대비해 내무부 차원에서 투자자 보호용 펀드(소버린 리스크 보험 펀드) 조성을 검토하기도 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