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 선우예권, 조성진, 임윤찬. 정상급 피아니스트 네 명이 한 무대에 오르는 꿈만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난 2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이 준비한 연주회 ‘아산 정주영 서거 25주기 추모 음악회: 이어지는 울림(사진)’에서다. 이 공연 해설을 맡은 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100년 후 한국 음악사를 회고할 때 기록될 장면이 아닐까 상상한다”고 평가했다.공연 구성부터 파격이었다. 독주로 처리하는 레퍼토리가 하나도 없었다. 첫 연주는 김선욱과 조성진이 맡았다. 피아노 한 대에 모인 이 둘은 따로 의자를 두고 앉아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 바단조’를 소화했다. 김선욱의 저음이 묵직하면서도 깔끔한 소리에 가깝다면, 조성진의 고음은 그 소리를 옷감 삼아 노니는 현란한 바느질 같았다.
라흐마니노프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연주는 밴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선후배인 선우예권과 임윤찬이 함께했다. 둘의 음악이 한 끼의 미식이 된 2악장 왈츠가 백미였다. 임윤찬의 세 박자 춤곡 리듬이 공간감을 채우는 와인이라면 선우예권의 선율은 고막을 잇달아 때리며 자극하는 ‘킥’이었다.
공연 2부에선 피아노 네 대, 연주자 네 명이 한꺼번에 무대에 올랐다. 연주곡은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의 서곡을 리스트가 피아노로 편곡한 버전. 김선욱이 단단하게 쌓은 화음은 후배들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음악적 사다리가 됐다. 선우예권과 조성진의 선율은 태양 플레어처럼 튀어 올라 독자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임윤찬은 선배들이 만든 음표의 은하수에 별처럼 반짝이는 고음을 수놓았다.
마지막 곡인 ‘헥사메론’은 리스트, 체르니, 쇼팽 등 19세기 스타 피아니스트 6명이 변주를 하나씩 맡아 만든 노래다. 이번 공연에선 작곡가 이하느리가 피아노 네 대로 함께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했다. 2시간에 걸친 프로그램이 끝나자 네 피아니스트는 나란히 서서 관객에게 인사했다. 앙코르는 두 곡이었다. 생상스 ‘죽음의 무도’를 선보인 뒤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중 ‘왈츠’로 마무리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