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앗과 꽃잎은 작다. 그러나 그 안에는 수천만 년의 시간과 생명이 응축돼 있다. 프랑스 주얼리 디자이너 소피 부이예뒤마는 이 섬세한 구조를 18캐럿 로즈골드로 번역한다. 단순한 자연의 모사를 넘어 생명의 질서를 금속 위에 옮기는 작업, 주얼리 브랜드 ‘미라 스텔라’는 그렇게 태어났다.
유산 속에서 피어난 창의성

소피 부이예뒤마에게 미학은 환경의 산물이었다. 프랑스의 유서 깊은 은세공 브랜드 ‘크리스토플’ 가문에서 태어난 그에게 예술과 장인정신은 일상의 언어였다. 이탈리아의 거장 조 폰티가 설계한 빌라에서 성장하며 비례와 조화, 금속의 질감을 체득한 그는 비즈니스스쿨 졸업 후 경영 대신 창작을 선택했다. 에르메스, 폴스미스 등 세계적인 하우스의 오브제를 디자인하며 감각을 익혔지만, 진정한 디자인 언어를 발견한 곳은 파리의 스튜디오가 아니라 노르망디의 정원이었다. 2009년, 물려받은 땅에 자연 정원을 가꾸며 그는 야생의 미학에 눈을 떴다. 바람과 곤충, 새가 씨앗을 옮기고 계절이 식물의 질서를 완성하는 야생의 미학이 샘솟는 곳. 여기서 그는 인간이 덧붙이지 않아도 이미 완성된 자연의 구조, 그리고 그것을 다른 물질로 ‘번역’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깨달았다. “내 정원이 무성해졌을 때, 다른 이들이 꽃을 보던 곳에서 나는 주얼리를 보았습니다.”
소피 부이예뒤마는 피에르알렉시 뒤마(현 에르메스 아티스틱디렉터)의 배우자다. 피에르는 회사 설립자 티에리 에르메스의 후손으로 전 최고경영자(CEO) 장루이 뒤마와 건축가 레나 그레고리아데의 아들이기도 하다.
생태 정원에서 채집한 시간의 결정체

노르망디 정원을 산책하다 옷깃에 매달린 꽃잎과 씨앗은 소피 부이예뒤마의 시선을 통해 영원히 바래지 않는 황금의 결정체로 다시 태어난다. 그는 만개한 꽃의 화려함보다 씨앗, 꼬투리처럼 생명의 긴장이 응축된 순간에 주목한다.
미라 스텔라의 대표 컬렉션인 ‘바다 케일 씨앗(Sea Kale Seed)’은 유기적인 타원형 실루엣으로 생동감을 전한다. 수천 년간 해안가에 자생하며 문명의 식량이 돼준 씨앗에 대한 경의다.
“바다 케일 씨앗은 주얼리 디자인을 할 때 기본이 되는 ‘둥근 형태’로서 구슬 같았어요. 하지만 이는 완벽한 구(球)처럼 너무 이상적인 형태가 아니라 가늘고 슬림한 타원형 실루엣 덕분에 유기적이고 생동감 있는 느낌을 주죠. 바다 케일은 수천 년 동안 노르망디와 영국 해안을 따라 자생해 왔어요. 수분(受粉)을 완료하면 씨앗은 방수성을 띠고 물을 따라 이동하죠. 바다 케일은 뿌리부터 꽃봉오리까지 전부 먹을 수 있어서 오랜 시간 식량으로 재배됐지만 이제는 바다에 자생하며 보호종으로 지정됐죠.”

‘수국 꽃잎’ 역시 8700만 년 전부터 지구에 존재한 식물의 생명력을 기린다. 인류 문명과 함께해 온 ‘아마씨 꼬투리(Flax Pod)’는 그의 정원이 있는 지역의 자부심을 담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자연이 문명에 기여해 온 역할을 기억하게 하는 상징적인 부적과도 같다.
자연을 금으로 옮기는 현대의 연금술
미라 스텔라의 작업은 채집한 식물을 허바리움처럼 말려 원형을 보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후 고대의 ‘로스트 왁스(밀랍 주조)’ 기법을 통해 자연의 형태를 동일한 비율로 재현한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과장하지 않는 것’이다. 씨앗의 돌기, 꽃잎의 미세한 맥까지 그대로 옮긴 뒤 18캐럿 금으로 주물을 뜬다. 이를 손으로 파일링하고 에머리(emery)로 다듬은 뒤 매트와 새틴이 교차하는 표면이 되도록 섬세하게 폴리싱한다. 이 단계에서 살아 있는 식물의 표피와 조직감을 닮은 미묘한 질감이 드러난다.소피 부이예뒤마가 금을 선택한 이유는 ‘번역’의 정확성과 맞닿아 있다. 자연이 만들어 낸 구조를 동일하게 옮기는 것이 이 주얼리의 핵심이기에 세부를 놓치지 않는 금이 최적의 매개체였다.
이보다 궁극의 이유는 바로 자연의 빛깔 때문이다. “금은 태양의 자연스러운 빛을 떠올리게 합니다. 제가 작업실에서 개발한 색조는 전통적인 옐로골드와 로즈골드의 중간 어딘가에 있어요. 노르망디 정원의 석양빛을 닮은 색입니다.” 미라 스텔라의 금빛은 흔히 보는 핑크빛 로즈골드보다 더 절제되고, 옐로골드보다 은은하다. 따뜻하지만 과장되지 않은, 부드러운 빛이다.
세계로 확장되는 사유의 씨앗
미라 스텔라라는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15년의 시간이 걸렸다. 정원이 무르익고 아이디어가 성숙하기를 기다린 결과다. ‘미라 스텔라’라는 이름은 정원을 사랑한 어머니(Mirabelle)와 증조모(Stella)의 이름을 합친 것이자 라틴어로 ‘별을 바라보다’라는 의미. 작은 씨앗을 통해 거대한 생명의 질서를 바라보는 이중적 시선이 브랜드명에 담겨 있다.현재 미라 스텔라는 파리, 도쿄,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의 편집숍에서 소개되고 있다. 그는 이 주얼리가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유산이 되길 바란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세운 부이예-크리스토플 박물관에서 오동나무 잎 모양의 티 트레이와 브로콜리 형상의 수프 그릇 뚜껑을 바라보며 상상의 세계를 확장한 기억처럼, 누군가에게 이 주얼리 역시 또 하나의 사유의 씨앗이 되기를.
씨앗을 몸에 지닌다는 것은 수천만 년의 시간을 통과한 생명의 ‘약속’을 소유한다는 뜻이다. 정원에서 채집한 이 시적인 조각들은 누군가의 살결 위에서 끝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이정민 라이프스타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