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격차 경영’을 주창한 권오현 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이 “한국의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무 제도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 탄생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8년 출간한 베스트셀러 <초격차>의 후속으로 최근 출간한 <다시, 초격차>에서다. 그는 삼성전자를 이끌 당시 자율출퇴근제 등 자율적이고 효율적인 업무인 ‘워크 스마트(work smart)’ 문화를 강조해온 인물이다.
권 전 회장은 이 책에서 “최근의 신기술과 신사업은 대체로 ‘타이밍 싸움’”이라며 “이젠 우리도 새로운 아이디어로 신사업을 개척해야 하는 시대인데, 매주 일할 시간을 정해두는 것은 난센스”라고 주장했다.
그는 “과도한 노동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주 단위가 아니라 연 단위 혹은 반기 단위로 조정 가능한 유연한 근무 제도라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법적으로 6개월 단위 탄력근로제를 운용할 수 있지만 주별 근로시간을 사전에 확정해야 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일반적이고 반복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직군이라면 주 52시간제가 의미 있을 수 있지만, 인공지능(AI)·반도체·바이오 같은 연구개발과 스타트업, 콘텐츠·지식재산권(IP) 산업과 같은 분야는 유연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봤다. “전 세계에서 스타트업의 노동 시간까지 법으로 규정해놓은 나라는 우리나라뿐일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세계적인 스타트업을 육성하겠다’고 말하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 구호에 불과합니다.”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가 아니라 ‘퍼스트 무버(first mover)’를 강조한 <초격차> 출간 이후 8년이 흘렀다. AI와 미중 패권경쟁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시대다. 기업,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리더십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번 책에서 권 전 회장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왜 인재와 조직은 그대로인데, 리더 한 명의 교체만으로 기업의 운명이 요동치는가?” 책은 제도와 리더십의 측면에서 새로운 시대의 생존 전략을 탐색한다. 그는 “‘초격차’ 경지에 이르렀던 인텔이나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이 갑자기 쇠락하는 모습”을 보며 이 같은 질문을 마주하게 됐다고 말한다.
조직 내 칸막이를 없애는 제도, 인재를 수성하기 위한 평가 방식을 비롯해 지속 가능한 조직문화에 관한 조언이 담겨 있다. ‘절대 쓰면 안 되는 사람부터 소거하라’는 인재 등용법, 리더라면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대체 리더를 육성하는 ‘후임자 플랜’을 마련해둬야 한다는 내용 등은 눈여겨볼 만하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