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업이 뭐냐고요? 자녀입니다." 둥지를 떠날 시기를 훌쩍 지난 것처럼 보이는 새가 말하자 부모 세대의 새는 말문을 잃고 그를 바라본다. 최근 출간된 사회과학서 <전업자녀>의 '웃픈' 표지 그림이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취업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 '쉬었음' 청년 70만 시대. 사회적 독립 연령이 됐지만 부모와 동거하며 경제적·정서적 둥지를 떠나지 않는 '전업자녀'는 100만~8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저자인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축소사회 대한민국에서 최적의 선택을 한 결과물로 바라본다. 전업자녀 현상은 문제가 아니라 징후다. "악화된 시대가 낳은 결핍과 부재를 새로운 가족의 역할로 분담"하는 상생 전략이다.
자녀 입장에서 전업자녀는 불가피해 보인다. "독립분화와 가족결성을 가로막는 장벽은 높아져만 간다. (…) 1인분의 자립 생활이 힘겨워 독립을 포기하고 부모에게 귀환했다." 구시대와 달리 자녀를 권위로 찍어누르지 않는 부모는 "억지로 내보내 고생시키느니 곁에 두고 돕겠다"는 평생 'AS 마인드'로 이들의 독립을 유예한다.
솜씨 좋은 칼잡이처럼 단문으로 몰아치는 글이 뜻밖의 쾌감을 준다. 명쾌한 논증 덕에 저성장 대한민국이 만들어낸 새로운 가족상을 해부하는 저자의 분석은 더욱 뼈아프다. 예컨대 가사분담에 관한 부분이 그렇다. 현대 가족은 겉보기에는 과거 성역할 고정관념에 따른 '남성 전업, 여성 가사'에서 평등한 가사분담으로 전환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무한책임의 균등 배분과 부담 증가"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조화에 부부 모두 강제적으로 투입되는 구조다. (…) 경제 상황이 나쁠수록 선택할 자유 자체가 적어지며 양립조화는 그림의 떡으로 전락한다. 공동부양의 조율에 실패하면 어느 한쪽은 희생해야 한다. 가사, 돌봄이 가족 내부로 집중될수록 더욱 그렇다."
책은 전업자녀 현상을 질책의 대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다. "전업자녀는 이제 더는 청년 그룹의 일탈 카드로만 치부할 수 없는 현상이다. 어쩌면 엄중한 시대 변화에 맞서 더 잘 살아내려는 처절한 몸부림의 생활 모델에 가깝다. 규범 질서의 파괴자가 아닌 구조개혁의 안내자로 바라봐야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커진다."
244쪽으로 비교적 얇은 책이지만 전업자녀 현상의 배경과 현황, 다른 국가의 비슷한 사례 등을 두루 검토한다. 일본의 '2.5세대 주택'처럼 한국도 대가족형 아파트 모델이 주목받을 것이라는 분석 등이 눈길을 끈다. "한때 호령하던" 4인 가족 중심 세상 이후 새로운 가족 형태와 그를 마주한 한국 사회의 미래가 궁금한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