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행기를 읽기 시작한 것은 50대 초반 무렵이다. 49세 때에야 비로소 유럽 3개국 여행을 하고 난 다음의 일이다. 여행의 경험이 또 다른 여행의 욕구를 불러왔음인가. 아니면 부족한 여행 경험을 독서로라도 채우고 싶은 대리 만족이었나.어쨌든 그렇게 해서 몇 권의 여행기를 읽었다. 맨 처음 읽은 여행기가 일본의 사진작가 후지와라 신야가 쓴 <인도 방랑>이었다. 그다음에 읽은 책이 브루노 바우만의 <돌아올 수 없는 사막 타클라마칸>이었다. 이 책은 동심원적 구성을 지녔다. 안에 스벤 헤딘이라는 탐험가가 1895년에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한 기록이 나오고, 밖에는 1989년 브루노 바우만이라는 사람이 같은 코스를 여행하는 기록이 나온다. 그것은 정확하게 94년 만의 일인데, 브루노 바우만은 헤딘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며 앞서서 간 여행자가 남긴 여러 가지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를 쓴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마치 탐정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입원실에서 세운 버킷리스트
그런데 나는 바로 그 책을 읽다가 그만 죽을병에 걸려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러고는 장장 6개월 동안 장기 입원 환자로 병원에 묶여서 살았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과 결심이 많았다. 이대로는 절대로 살지 않겠다. 끝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리라. 아니, 살아내고 말리라. 그것은 절치부심 결심이었고 각오였다.
버킷리스트란 말을 처음 익히고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여러 가지 세워본 것도 병원 침상에 엎드려 신음하면서였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전반전 인생이었다면 후반전 인생은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 했고 무엇이 새로워져도 새로워져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하루 순간순간 삶의 목표가 분명해야 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그때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은 몇 가지 주제를 세워 책을 한 권씩 쓰는 것이었다. 질병, 고향, 풀꽃, 사랑, 시. 다섯 가지 주제가 그것이었는데 결국은 병원에서 어렵사리 퇴원하고 교직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나서 그 다섯 가지 주제의 책을 모두 쓰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장기적으로 이뤄야 할 버킷리스트보다 시급하게 이뤄야 할 버킷리스트는 병원에 오기 전에 읽다가 말고 침상 머리맡에 두고 온 책 한 권을 마저 읽는 일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읽다가 잠드는 버릇이 있는데 그 책 또한 머리맡에 놓고 틈틈이 읽던 책이었다.
사막 한가운데 '방황하는 호수'
바로 <돌아올 수 없는 사막 타클라마칸>이라는 책. 거의 다 읽고 마지막 10여 쪽을 남겨두고 왔던 것이다. 주제별로 책을 쓰는 일은 장기적인 버킷리스트였지만 읽다가 만 이 책 10여 쪽을 마저 읽는 일은 단기적인 버킷리스트였다. 정말로 내가 이 책을 마저 읽지 못하고 죽는다면 무엇보다 그 일이 섭섭하고 억울할 것만 같았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물론 내가 맨 처음 한 일은 내 방으로 들어가 침상 머리맡에서 그 책을 찾아내 나머지 10여 쪽을 읽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목마른 사람이 허겁지겁 물을 마시듯 하는 것 같았으리라. 그때의 안도감과 고요한 기쁨을 잊을 수 없다. 아, 드디어 내가 살아 있는 목숨으로 이 일을 해냈구나! 그것은 작은 일이었지만 큰일이었고 삶에 대한 청신호였다.
이렇게 끝까지 읽은 그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사막의 호수에 관한 것이다. 사막에도 강이 있고 호수가 있다고 한다. 타클라마칸 사막에는 타림강이 가로질러 흐른다고 한다. 그런데 그 타림강 유역에는 로프노르란 이름의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가 일명 ‘방황하는 호수’로 1600년 주기로 남북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이것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비한 자연의 한 이야기다. 분명히 호수가 있던 자리가 모래밭이 되고 모래밭이 있던 자리에 반대로 호수가 생긴다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커다란 오아시스 아닐까? 느닷없이 열리는 샘물, 어이없는 풍경의 반전. 오아시스야말로 사막을 사막이게 하고 사막을 사막으로 완성해 주는 결정적인 단서다.
나는 정년 이후 몇 차례 외국 여행을 하면서 실제로 오아시스를 만나본 일이 있다. 우선은 미국 데스밸리에서 만난 오아시스. 그 덕분에 희대의 사기꾼 스코티는 궁전 같은 집을 짓고 살았고 오늘날 관광 명소를 남겼다. 그다음은 중국 실크로드 찾아가는 길에서 만난 밍사산(鳴沙山) 아래 웨야취안(月牙泉). 그리고 지난해 여름 탄자니아 여행길에서 만난 아프리카의 오아시스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샘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목마른 인생길에 숨겨진 샘물
오아시스는 결코 밖에서 들어간 물이 아니다. 빗물이 고인 샘물이 아니란 말이다. 땅속 어딘가에서부터 강물로 흘러와서 솟아 나온 샘물이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팍팍한 사막길에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사막에도 오아시스란 것이 있듯이 우리네 인생에도 오아시스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오늘날 비록 내가 목마른 사막길을 가지만 나의 인생 저 깊은 곳에 숨겨진 강물 하나 흐르고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아야 한다.
진정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인생을 장기적으로 바라보려는 안목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고는 충분히 기다릴 만큼 기다리고 준비해야 한다. 아니, 나 스스로 내 안에 보이지 않는 강물 하나를 숨겨서 길러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 인생에도 오아시스가 열리는 시기가 오고야 말 것이다. 그야말로 신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푸르른 날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젊은이들이 부디 나의 이런 생각에 동의해 주었으면 좋겠다.
“어이없어라/ 짐작하지도 못한 곳에/ 느닷없는 조그만 호수/ 아니면 커다란 우물// 무너지고 부서지고/ 미끄러지는 모래 산/ 모래밭 그 어디쯤/ 철렁 하늘빛까지 담아서/ 목마른 생명을 기르는 비현실 풍경// 우리네 인생에서도/ 그런 행복의 순간/ 놀라운 반전이 있었을까?// 그것이 너한테/ 나였다면!/ 나한테 또한/ 너였다면!”(나태주, ‘오아시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