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장님이 운수업을 50여 년 해왔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어요. 외환위기 때도, 코로나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대요."
설 연휴를 일주일 앞둔 10일, 경기 이천시 부발읍 삼성종합물류 차고지. 대당 3억5000만원짜리 대형 화물트럭 6대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명절 특수로 분주해야 할 시기지만 일감이 없어 차량이 '발이 묶인' 것이다. 이 회사는 보유 차량 41대 가운데 6대가 멈춰 선 상태다. 평소 같으면 24시간 365일 풀가동으로 쉴 틈이 없었다고 한다.
이 회사 관계자 A씨는 "원래 명절 때면 보름 전부터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바빴다"며 "지금은 우리 차들도 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 주력 품목인 소주·음료 등 식음료 물량은 크게 줄었다. 그는 "3교대로 돌아가던 공장 라인이 1개로 축소됐다"며 "왕복 운행이 편도 한 번으로 줄었다"고 했다. 일감이 끊기자 운송기사들도 하나둘 회사를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불경기 여파로 전국의 물류창고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폐업 규모는 8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났다.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대형 유통기업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 물류창고업체 폐업 32곳 급증
한경닷컴이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 데이터개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폐업한 물류창고업체는 총 132곳으로 전년 대비 32곳이 증가했다. 한해에 30곳이 넘게 물류창고가 폐업한 것은 지난 2017년 이후 8년 만이다. 팬데믹으로 일어난 '물류 붐'이 지나간 후 후유증처럼 2023년 역대 최다인 158곳이 폐업하면서 조정이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불황의 기운이 확산한 탓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A씨는 "사람들이 먹는 것 자체가 줄었다"며 "대형마트·편의점 등으로 나가는 납품 물량도 예년만 못하다"고 설명했다. 삼성종합물류의 물량 감소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됐다. 인근 이천시 호법면의 한 물류센터 관계자도 "물량이 30%는 빠졌다"며 "나라가 왜 점점 어려워지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 밖에도 여러 업체가 고충을 토로하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전재범 경기도화물자동차운송사업협회 이사장은 "화물차 가동률을 보면 경기를 알 수 있는데, 지금 물동량이 많이 줄었다"며 "건축비가 엄청나게 상승하면서 건축자재 물량도 많이 줄었다. 이게 2~3년 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수출액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반도체처럼 부피가 작고 무게가 덜 나가는 품목이 끌어올린 착시"라며 "실질적으로 물동량에 도움이 되는 제품의 수출은 오히려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천항을 중심으로 중국과의 물량이 완전히 끊겨 회복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주요 택배사도 물량이 30% 빠졌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 불경기에 시장 재편까지

전문가들은 이번 현상을 내수 침체와 시장 구조 변화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보고 있다. 물류창고 수요는 소비가 늘어날수록 재고가 확대되며 함께 커지는 구조다. 그러나 2023년 이후 고금리·고물가 기조가 이어지고 가계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건설과 제조업 일부 업종의 부진이 겹치면서 영향을 받고 있다.
여기에 쿠팡과 마켓컬리 등 대형 온라인 유통사가 빠르게 성장하며 이른바 '거상' 중심으로 창고 수요가 쏠리고 상대적으로 중소형 창고의 업황이 악화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홈플러스의 경영 위기, 대형마트·편의점 등 전통 유통채널의 정체도 한몫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오프라인에서 잘 안되고 있는 영역을 더 살리고 지역 및 업종 간 연결성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현장서 고충 쏟아진다…"규제 풀어 투자 유도해야"

정치권에서도 현장 체감 경기가 위기 수준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최근 지역구 물류 업계의 고충을 접수하고 현장을 방문한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화물 물류가 멈췄다는 건 생산과 소비 양쪽이 다 죽어 있다는 뜻"이라며 "열려 있는 곳도 오늘내일 닫을 생각인데 철거 비용 때문에 그것도 못 하는 총체적 난국"이라고도 짚었다.
송 의원은 "김대중(DJ) 정부 때 IMF 위기에서 그린벨트·토지공개념까지 손을 대며 과감하게 규제를 풀었다"며 "지금이야말로 그 수준의 규제 완화로 민간 투자를 유도해야 경제 대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우/신현보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