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중동 방위산업 시장을 본격 공략하고 나섰다. 미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중동 국가를 상대로 기술 이전과 현지 공장 설립을 내걸며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중국은 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개막한 ‘세계방산전시회(WDS) 2026’에서 사상 최대 규모 전시장을 차렸다. 올해 행사에 참가한 중국 기업은 190개로 직전 행사인 2024년(73개)보다 대폭 늘었다.

중국은 중동 국가와 대규모 군사 훈련을 하며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사우디 해군과 연합 해상 훈련을 한 데 이어 12월 미국 F-16 전투기가 주력인 아랍에미리트(UAE) 공군과 3년 연속 연합 훈련(팰컨실드)을 이어갔다.
중국은 2020년 이후 석유 증산 문제 등으로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소원해진 틈을 타 중동 지역에 무기 수출을 늘리려 하고 있다. 미국산 F-35 전투기의 중동 수출이 줄자 중국산 J-35 스텔스기 등으로 중동 국가에 접근하고 있다.
전시장 규모 韓의 두 배…中 방산기업 190곳, 중동 출격
"오일 머니 잡아라"…긴장하는 K방산
2022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가 수도 리야드에서 격년마다 열고 있는 ‘세계방산전시회(WDS·world defense show)’. 무기 국산화를 이루려는 사우디 왕실의 지원을 받아 단숨에 중동 최대 방위산업 행사로 자리 잡았다."오일 머니 잡아라"…긴장하는 K방산
사우디 왕실의 이런 계획을 간파하고 매번 리야드에 매머드급 원정대를 보내는 나라가 중국이다. 올해로 3회째인 ‘WDS 2026’에서도 중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전시관을 차렸다. 미국이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국가에 전략 무기를 팔지 않으려는 현 시점을 중동 장악의 호기로 여겨서다. 중국이 방산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사우디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무기를 판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 역대급 전시장 차린 중국
WDS 2026 첫날인 8일(현지시간) 리야드의 말함 전시장 곳곳엔 중국 오성홍기가 걸려 있었다. 중국 기업들은 행사장(27만3000㎡) 중 5000㎡ 이상의 면적에 전시장을 차렸다. 사우디를 제외하면 가장 넓은 전시 공간으로 한국 전시장(2700㎡)의 두 배다. 올해 참가 기업도 190개로 73개인 2024년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한국 기업 수의 다섯 배에 가까운 규모다.중국 기업 전시장 곳곳에 로봇 전투견이 정찰하듯 돌아다녔다. 한 중국 기업 전시장 중앙에는 중형 차량에 10여 대의 자폭 드론이 모형(모크업)이 아니라 실제 제품으로 장착돼 전시돼 있었다. 드론의 구체적 사양을 묻기 위해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중국 전시장 직원은 “사진을 찍지 말라(No photo)”며 접근을 제한했다. 그 옆으로 터번을 쓴 사우디 바이어들만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중국 기업들은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 등을 내세우며 사우디 방문객을 끌어들였다. 2030년까지 국방 예산의 50%를 투입해 자국 생산을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운 사우디 정부에 맞춘 접근법이다. 사우디는 2019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 시설이 후티 반군의 드론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뒤 관련 무기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사우디는 올해 WDS에서 자체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드론·대공포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전시관을 꾸렸다.
중국은 광범위한 제조 인프라를 앞세워 사우디 맞춤형 무기를 제조하는 데 힘쓰고 있다. 2017년 중국항천과학기술그룹이 사우디 현지에서 드론 300대 생산에 나선 것이 대표적인 예다. 사우디 방산 유통사 엠다드나제드의 압둘라흐만 알 아리피 대표는 “단순 소모품부터 고사양 전투 장비를 아우르며 모든 요구사항을 즉각 반영할 수 있는 제조 인프라를 갖춘 나라가 중국”이라며 “중국 기업의 현지 기술 이전을 전제로 한 협업 관계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 중국산 무기가 K방산 위협하나
중국은 무기 외에 다른 인프라 건설을 내세우기도 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사우디 한 드론 기업 임원은 “많은 사우디 기업이 중국 제조 설비에 기대 제품 국산화율을 높이고 있다”며 “방산을 비롯해 철도와 항만, 통신 등 대규모 인프라를 패키지로 묶어 투자하는 중국은 중동엔 매력적인 선택지”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최종 무기 사용자를 명확히 밝혀야 하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협약 당사자가 아니어서 규제에서 자유로운 점도 중국산 무기의 강점으로 꼽힌다.중국 방산기업의 약진이 한국 방산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무기 체계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선입견이 사라지면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중국산 무기 수요가 늘어날 수 있어서다. 이른 납기와 가성비가 강점인 한국 방산기업이 중동 시장에서 힘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다국적 무기 체계를 혼용하는 중동의 군 운용 방식도 경계해야 할 요소다. 한 글로벌 방산 기업 임원은 “사우디는 한국 다연장로켓 ‘천무’의 정확한 타격 지점을 찾아내기 위해 중국산 무인기를 활용한다”며 “서로 다른 국적의 기기가 데이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무기 체계의 작동 원리 등이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리야드=원종환/배성수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