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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왜 이래요?' 달걀 물가의 비밀은…정부 발표에 '술렁' [이광식의 한입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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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왜 이래요?' 달걀 물가의 비밀은…정부 발표에 '술렁' [이광식의 한입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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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가 당국이 물가를 잡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공급을 늘리거나 △수요를 줄이거나 △물가 산출 방식을 바꾸거나. 보통은 수급 조절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물가 산식 자체를 손보는 사례도 아예 없진 않다. 대표적인 지표가 ‘근원물가지수’다. 1973년 아서 번스 당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고안한 이 지수는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 흐름을 보여준다. “확장적 통화정책을 계속하려고 물가를 낮게 보이려 쓴 꼼수”라는 비판이 많지만, 기초적인 물가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유용하다는 시선도 공존한다. ‘기초 경제 여건으로 결정되는 물가지수’라는 평가도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최근 물가 당국이 달걀 물가 산출 방식에 손을 대기로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13일 발표한 ‘축산물 유통구조 개선 방안’에서 “‘특란’과 ‘대란’ 가격을 물량 기준으로 가중평균해 달걀 소비자가격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특란 가격만을 기준으로 달걀 가격을 공표했는데, 이제는 대란까지 합쳐서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이어 "관련 데이터 검증, 국가데이터처와의 협의를 거쳐 소비자물가지수(CPI)에도 반영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달걀 가격 조사 대상을 특란에서 대란까지 넓힌 배경엔 달걀값 상승이 있다. 9일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불과 지난달까지만 해도 계란 한 판(특란 30구) 가격은 7000원대였다. 지난해 5월 약 4년 만에 7000원을 돌파한 뒤 연말 잠시 6000원대로 내려왔다가 올초 다시 급등했다. 이달 첫째 주(1~7일)엔 평균 가격이 6136원으로, 지난해는 물론 평년 수준보다도 낮아졌지만, 지난달까진 상황이 그렇지 않았다.

    특란이 계란값의 '표준'이 된 배경을 이해하려면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70년대 한국은 가난한 나라였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970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명목)은 272달러에 불과했다. 1970년대를 흔히 ‘고도성장기’라고 하는데, 1979년에도 1814달러였다. 그때 일본의 1인당 GDP는 9000달러가 넘었다.

    이런 나라에선 달걀을 먹기는커녕 구경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유통 체계도 허점이 많았다. 당시에는 달걀을 낱개로 팔거나 새끼줄에 엮어 다섯 개씩 묶어 판매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크기와 상관없이 개수로 거래되다 보니 ‘작은 달걀’을 산 소비자 불만이 컸다. 생산자도 굳이 ‘실한 달걀’을 만들 유인이 크지 않았다.




    전환점이 1974년이었다. 대한양계협회가 달걀을 무게 기준으로 특란부터 경란까지 다섯 단계로 분류하면서다. 양계협회는 달걀을 특란(60g 이상), 대란(54~60g), 중란(47~54g), 소란(42~47g), 경란(42g 미만)으로 구분했다.

    약 30년 후인 2003년엔 현재의 계란 등급제가 도입됐다.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축산물등급판정소는 68g이상을 ‘왕란’으로 신설하고, 그 아래를 특란(60~68g), 대란(52~60g), 중란(44~52g), 소란(44g 미만)으로 구분했다. 왕란이 추가되고 경란이 빠지는 한편, 전반적으로 무게 기준이 상향됐다. 이 기준이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확산하며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달걀 등급은 5가지지만, 물가 조사 대상이 되는 달걀은 대체로 ‘특란’ 하나다. 생산량에서 특란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매달 생산되는 달걀의 절반 이상이 특란이다. 식용란선별포장업협회의 월간 계란 소식지(2026년 1월호)에 따르면 지난해 가정용으로 선별·포장된 달걀 약 10억6500만 개 중 특란은 5억3000만 개로 49.8%에 달했다.

    이렇다 보니 우리가 통계로 접하는 계란 가격은 전부 다 특란 가격이다. 축산물품질평가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 식용란선별포장업협회, 농식품부 모두 특란을 기준으로 가격을 본다.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출하는 국가데이터처는 조사 품목의 구체적인 규격을 공개하지 않지만, 업계에선 특란 기준으로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쯤 되면 특란을 기준으로 봐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물가 당국에 굳이 여기에 손을 대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계절마다 닭의 영양상태가 왔다갔다하다보니 특란 생산 비중도 변동 폭이 크다. 특히 여름이 문제다. 무더위에 닭이 아예 폐사하는 상황에서 특란처럼 크기가 큰 달걀 생산도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전체 달걀 중 특란 비중은 3월엔 58%까지 오르지만, 8월에는 52%까지 떨어진다.



    수요가 일정한 상황에서 특란 생산량이 줄면 전체 계란 가격이 급등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축산물품질평가원 자료를 보면 특란 30구 평균 가격은 6~9월 평년 기준 6733원으로, 12~3월(6478원)보다 높다.

    이에 물가 당국이 내놓은 해법이 ‘특란·대란 가중평균’이다. 앞서 인용한 통계에서 대란 생산량은 3억3500만개(31.5%), 왕란은 1억6700만개(15.7%)로 각각 특란의 뒤를 이었다. 특란과 대란을 합치면 가정용 달걀의 80%를 넘고, 전체 생산량 기준으로는 90%에 달한다. 여름철엔 특란 비중이 줄어드는 대신 대란 비중이 늘어나는 구조기 때문에 계절 영향도 덜 받는다.

    다만 소비자 체감 물가와의 괴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 소비 현장에선 왕란이나 특란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특란이 아닌 특란·대란 평균 가격을 공표할 경우 소비자들이 느끼는 물가와 통계 간 괴리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물가는 수준뿐 아니라 ‘추이’ 역시 중요한 만큼, 기준 변경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농식품부는 2003년 자리 잡은 달걀 등급 명칭도 개편할 계획이다. 왕란부터 소란까지의 명칭을 2XL(투 엑스라지)부터 S(스몰)로 바꾼다는 구상이다. ‘왕란’과 ‘특란’ 중 무엇이 더 큰지 헷갈린다는 소비자 불만을 반영한 조치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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