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용 소프트웨어(SaaS) 기업들이 주가 폭락과 수익성 악화라는 '사스포칼립스(SaaS+Apocalypse)'에 직면한 가운데, 빅테크 업계에서 데이터 분석기업 팰런티어의 사업 모델을 이식하려는 이른바 '팰런티어화' 바람이 불고 있다. 단순 제품 판매를 넘어 고객사 현장에 엔지니어를 직접 투입해 문제를 해결하는 '현장 배치 엔지니어(FDE)'가 테크 기업의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7일(현지시간) 테크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오픈AI는 기업용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수백 명의 AI 기술 컨설턴트와 FDE 고용에 착수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AI 네이티브가 아닌 기업들은 모델을 기존 시스템에 연결하거나 에이전트를 구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오픈AI 엔지니어가 직접 기업 환경에 맞게 모델을 최적화하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오픈AI의 강력한 경쟁사인 앤스로픽 또한 FDE가 포함된 응용 AI 팀을 기존 대비 5배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어도비와 세일즈포스 등 전통적인 SaaS 강자도 작년 말부터 앞다퉈 FDE 채용 및 전담 팀 구성을 공식화하고 나섰다. 2023년 1월 대비 FDE 채용 공고는 11배 이상 급증했다.
FDE는 팰런티어가 창업 초기 도입한 개념이다. 팰런티어 내부에서 '델타(Delta)'로 불리는 이들은 일반적인 개발자와 역할이 다르다. 범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사에 수개월간 상주하며 현장의 가장 난해한 문제를 팰런티어의 플랫폼으로 해결하는 '솔루션 설계자'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팰런티어의 핵심인 '온톨로지(ontology)' 구축에 이들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온톨로지는 인공지능(AI)이 이해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정의하고 구조화하는 작업을 말한다. FDE는 전사적자원관리(ERP) 데이터부터 비정형 문서까지 고객사의 모든 데이터를 통합해 AI가 즉각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영업 방식 또한 파격적이다. 이들은 '부트캠프'라는 과정을 통해 현장에서 5일 이내에 실제 데이터 수집부터 데모 구현까지 마친다. 화려한 슬라이드 발표 대신 실제 작동하는 솔루션을 현장에서 보여주는 방식은 타사 대비 압도적인 고객 채택률로 이어졌다.


이러한 전략은 실적으로 증명됐다. 팰런티어의 2025년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0% 증가했으며, 영업이익률은 57%에 달했다. 매출 증가율과 영업이익률 합이 40%를 넘으면 우량 기업으로 평가받는 '룰 오브 40(rule of 40)' 지표에서 팰런티어는 무려 127%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팰런티어가 기존 SaaS 기업의 위기 요인인 '좌석당 과금제(seat-based pricing)'에서 자유롭다는 점에 주목한다. 팰런티어는 정부기관용 운영체제(OS)인 고담의 경우 중앙처리장치(CPU)당 요금을 부과하고, 기업용 OS 파운드리는 연 단위 계약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I 에이전트 도입에 따른 인력 감축이 매출 타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하지만 '팰런티어화'가 모든 기업의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미국 최대 벤처캐피털(VC)인 안드레센호로위츠(a16z)는 "최근 많은 스타트업들이 'XX영역의 팰런티어'를 자처하고 있다"라며 '모든 것의 팰런티어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a16z는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를 수개월간 고객사에 배치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일"이라며 팰런티어 모델이 성공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해결하려는 문제가 국가 안보 등 중대한 사안인가 △데이터 통합이 어려운 고도의 규제 산업인가 △소수의 거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가가 바로 그것이다.
테크업계 한 관계자는 "팰런티어는 10년 이상 현장에서 축적한 노하우와 숙련된 FDE 조직을 보유하고 있다"며 "신생 스타트업이 단순 인력 확충만으로 이 같은 '팰런티어식' 밀착형 솔루션 역량을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