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방 열원이 가스보일러에서 전기히트펌프로 전환되면 난방 산업 생태계는 구조적 전환을 겪을 수밖에 없다. 내연기관차가 전기차로 바뀌며 자동차 부품 공급망이 겪고 있는 격변이 난방 부문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의미다. 보일러들, 지역난방사업을 하는 집단에너지사업자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환경 변화 속에서 국내 보일러 업계 점유율 1위인 경동나비엔은 이미 4년 전부터 히트펌프 개발에 착수했다. 김용범 경동 부사장(사진)은 8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가스보일러 최대 시장인 영국이 2018년부터 국가 차원의 히트펌프 보급 정책을 본격화하는 것을 보고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경동은 현재 중국 협력업체에서 자사 설계를 적용한 전기히트펌프를 생산해 영국과 미국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히트펌프 산업을 “정확히 반반짜리 산업”이라고 표현했다. 냉매·압축기·인버터가 결합된 실외기 영역은 에어컨 대량 생산 노하우를 가진 가전업체의 강점이 뚜렷하지만, 실내 물 제어와 배관, 밸브, 방별 온도 조절 등 기존 난방 시스템과의 연동은 보일러 업체가 오랜 기간 축적해온 기술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한쪽의 역량만으로는 히트펌프 전환을 완결하기 어렵다”고 했다.
히트펌프 산업 육성의 성공 사례로 일본 ‘에코큐트’ 프로젝트를 소개하기도 했다. 일본은 2001년 정부 주도로 파나소닉, 다이킨, 코로나 등 관련 기업들이 참여해 가스온수기를 히트펌프 방식으로 전환하는 기술을 연구했다. 이를 통해 탄소배출량이 제로(0)인 CO2 냉매 압축기 등 핵심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참여 기업들은 기술을 공유해 제품을 상용화했다. 김 부사장은 “일본은 전기화 과정에서 특정 산업의 도태를 막기 위해 정부가 기술과 시장을 정교하게 설계해 수출 산업으로 키워냈다”고 했다.
그는 다만 히트펌프 산업의 국산화에 대해서는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 부사장은 “시장을 먼저 키우고 물량이 쌓이면 생산기지와 공급망은 자연스럽게 국내로 옮겨온다”며 “초기부터 100% 국산화를 요구하면 가전사도, 보일러사도 모두 대응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단계적인 국산화 비율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술적 한계와 설치 인력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혔다. 영하 10~20도의 혹한기에는 히트펌프의 난방효율(COP)이 급격히 떨어져 전기요금 부담이 커지는 만큼, 기술 개선 전까지는 보일러와 히트펌프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난방 수요로 겨울철에도 전력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 피크 관리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김 부사장은 “기존 가스보일러의 연료를 수소로 단계적으로 전환하는 기술 개발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히트펌프는 실외기 설치와 통신선 연결, 물배관 시공 등에서 기존 보일러와 전혀 다른 작업이 요구된다. 영국은 히트펌프 확산 과정에서 기존 보일러 설치업자를 대상으로 교육과 자격증 제도를 운영해 직업 전환을 유도했다. 김 부사장은 “영국은 보일러 설치업자를 대상으로 교육과 자격증 제도를 운영해 연착륙을 유도했다”며 “히트펌프는 설치 공정이 복잡해 단가가 높지만, 숙련된 인력에게는 오히려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