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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관 라이프자산운용 부사장
코스피가 드디어 5000 시대를 열었다. 작년 10월 27일 처음으로 4000 고지를 넘어선 지 불과 3개월 만이다. 사상 최고치 경신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지만, 전대미문의 속도로 전개되는 상승장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섞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작년에 주식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했던 대형 증권사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최근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을 사용할 줄 모르는 고령층 손님들이 계좌 개설을 위해 지점으로 몰리면서 낮 시간대 업무가 사실상 마비될 정도”라며, “아직 지점 방문을 준비 중인 대기 수요가 훨씬 더 많다”고 귀띔할 정도다.
주식 운용이 주력인 사모운용사 상위 10곳의 설정액은 올해 들어만 1조 2000억원 이상 증가했다. 2015년 출범한 국내 헤지펀드 시장은 2019년 라임·옵티머스 사태라는 큰 고비를 겪은 뒤, 만 10년만에 비로소 전성기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지금 시장을 지배하는 감정은 낙관보다는 ‘포지션 공포’에 가깝다. 기관과 개인 모두 주식 비중이 충분하지 않다는 불안감, 즉 FOMO(Fear of Missing Out)가 투자 의사결정을 앞당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국면일수록 지수 자체보다는 그 이면의 구조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코스피 상승의 절반은 삼성전자·하이닉스
2025년 1월 2일 코스피는 2400.87포인트로 출발했다. 당시 코스피의 전체 시가총액은 1963조 원이었다. 지난 23일 고점 기준 코스피는 5021.13포인트를 기록했고, 시가총액은 4125조 원으로 늘어났다.13개월만에 지수가 두 배 이상 상승한 데에는 무엇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여도가 컸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581조5905억원, SK하이닉스는 433조7438억 원 증가했다.
두 종목의 시가총액 상승분은 코스피 전체 증가분의 48.5%를 차지한다. 반면 시가총액 3위인 현대차의 증가분은 60조 1349억원으로 전체의 2.9%에 그친다. 즉, 코스피 5000은 ‘모두의 동반 랠리’라기보다, 반도체 쌍두마차가 지수를 이끈 결과에 가깝다.

참고로 지난 13개월 사이 시가총액 10위에서 밀려난 종목들로는 셀트리온, KB금융지주, NAVER가 있다.
삼성전자·하이닉스의 영향력은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현재 코스피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21배로, 절대 수준만 놓고 보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코스피의 2026년 예상 영업이익 기준 선행 PER은 10.59배로 크게 낮아진다. 다만 삼성전자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가 173조원, 하이닉스가 121조원으로 추정됨에 따라 올해 주식시장의 향방도 이 두 종목에 의해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현대차는 로봇 테마로 올 초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올해 말 기준 EBITDA는 19조원에 그칠 전망이다.
코스피의 낮은 선행PER은 시장 전체가 저평가라는 의미보다는, 소수의 초대형 기업의 이익 가시성이 만든 착시 효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지수의 높낮이를 평가할 때 ‘코스피 전체’와 각 섹터 또는 기업별 밸류를 구분해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은 사고, 개인은 조기 이익실현
2025년 초부터 지난 23일까지 투자자별 거래내역을 살펴보면, 기관은 20조 6910억원을 순매수했고, 개인이 32조5940억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2조1370억 원 순매도를 기록했다. 기관 중 금융투자가 35조 2950억 원을 순매수했는데 이 중 상당수가 펀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분기별로 보면, 작년 3분기 상승장에서 외국인은 집중적으로 매수했고 개인이 이익 실현에 나섰던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4분기에도 기관 매수는 이어졌지만, 개인은 올해 1월까지 순매도 기조를 유지했다.
즉, 현재 시장에 남아 있는 개인 투자자의 평균 매입 단가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외국인은 대세 상승 구간에서 포지션을 구축하며 수익을 실현 중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향후 변동성 국면에서 수급의 취약 지점이 어디일지 가늠케 해준다. 참고로 2025년 7월 1일 이후 지난 23일까지의 코스피 수익률이 61.5%에 달한다.
현재 여의도의 자산운용사들은 해외 자금 유치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 외국인 투자자들은 단기적인 가격 변동에 베팅해 빠르게 이탈하는 투기성 자금이 아니다. 통상 3 ~ 5년 이상의 투자 기간을 전제로 하는 장기 자금의 성격을 띤다. 이러한 자금 유입은 코스피의 변동성을 키우기보다는 수급의 안정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외국인 수급의 방향성 역시 점차 단기 매매 중심에서 장기 투자 중심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은 결정적인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지수 편입은 일회성 자금 유입을 넘어, 연기금과 글로벌 장기 운용 자금의 구조적 유입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공시 제도와 시장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 기업들도 IR 역량을 높여야 한다. 단순한 실적 설명을 넘어 중장기 전략과 자본 배분 철학을 잠재적인 해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AI버블 논란, 닷컴버블과는 다르다
작년 하반기 글로벌 주식시장에는 AI버블 논란이 변동성을 키운 측면이 있다. 연초 다소 그런 우려들은 가라앉은 분위기이긴 하지만, 여전히 하반기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잠재적 악재로는 트럼프발 관세나 미국의 금리, 실업률과 같은 매크로보다는AI버블에 대한 염려가 꼽힌다.이와 대조적으로 국내에서는 미국 CES에서 현대차의 자회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선보인 애틀라스로 인해 AI로봇 테마가 현대차를 더 이상 자동차 섹터에 머무르지 않게 탈바꿈 시키고 있긴 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의 S&P500지수의 현재 PER은 27.62배로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시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2026년말 기준 선행PER은 22.22배 수준으로 높지 않다. 즉, 올해 미국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24% 수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참고로 마이크로소프트는 1999년 PER이 129배에 달했고, 그해 연말 주가를 회복하는데 2016년 8월까지 16년 8개월이 걸렸다. 또 아마존은 같은 시기 대규모 적자로 PER 산정이 불가능했는데, 주가는 2009년 10월에야 닷컴버블 시기의 고점 수준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하면 매그니피센트7(M7)으로 불리는 미국의 대형 기술주들의 밸류에이션은 테슬라를 제외하면 닷컴버블 당시와 같은 극단에 이르지는 않았다. AI에 대한 현재의 기대감들이 과도할 수는 있으나, 실체 없는 서사에 기댔던 닷컴버블과 분명 차이가 있다. 물론 버블의 존재 여부보다는 지금의 기대가 얼마나 빠르게 실적으로 증명될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지배구조 개혁, 본격적인 2026년
2025년 개정된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 등)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했다. 개정법안은 이사로 하여금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도록 함으로써 코스피 디스카운트 해소 원년의 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당소득 분리과세 역시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관계 불일치를 완화하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올해에도 자사주 매입 소각 의무화 등 기업 지배구조 제도 개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상속 증여세제 개편에 대한 논의도 군불을 지피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제도 하나 뜯어고치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제도의 개선이 병행되어야 가능하다. 우리에게 자본시장의 신뢰를 회복한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 애초부터 신뢰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처음으로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야 하는 입장이다.
코스피 5000은 끝이 아니라 시험대다
주식시장의 기록 경신이 자본시장의 관점에서 의미 있는 이유는 숫자 그 자체가 아니라, 기업의 실적과 성장 잠재력이 주가에 투명하게 반영될 수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코스피를 이끄는 기업들도 면면이 바뀌고 있다. 10년 전,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가전, 디스플레이, 철강, 화학 등 굴뚝산업에서 이제 AI, 반도체, 로봇, 바이오, 방산 등 최첨단 산업들로 재편되고 있다. 앞으로도 한국의 주식시장에 기대를 걸 수 있는 대목이다.
산업의 진화는 기업이 만들고, 시장은 이를 가격에 반영한다. 정책의 역할은 산업의 방향을 정하는 것보다는 투명성과 건강한 지배구조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 있다. 코스피 5000은 도착지가 아니라 우리의 자본시장 구조가 성숙한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