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이주비 대출 규제가 서울 공급의 80%가량을 차지하는 도시정비사업을 강타하고 있다. 대출 장벽에 따른 이주 지연으로 주택 공급이 늦어질 뿐 아니라 사업비 인상분이 고스란히 분양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이자 부담 증가·사업 지연 우려
서울시는 재건축·재개발 사업 지연을 막기 위해 이주비 대출 규제 완화를 정부에 건의했다고 27일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6·27 대책’과 ‘10·15 대책’을 통해 1주택자의 이주비 대출 담보인정비율(LTV)을 40%(최대 6억원)로 강화했다. 중소형 아파트 두 채를 받는 ‘1+1 분양’ 조합원을 포함한 다주택자의 LTV는 ‘제로(0)’로 떨어져 이주비 대출이 원천 차단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서울에서 이주를 계획 중인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43곳 중 91%인 39곳(3만1000가구)이 타격을 받는다. 이주비 대출 적용 대상지는 총 40곳인데 한 곳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을 통해 미리 이주비를 확보했다.
이주 지연으로 착공과 분양, 준공 등 후속 절차가 줄줄이 늦춰질 수밖에 없게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1주택자는 최대 6억원까지 이주비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강남권 등 고가 지역은 전셋값이 6억원을 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주택 조합원이 많은 사업장은 고충이 더욱 크다. 다주택 조합원 비율은 정비사업장에 따라 10~30%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 조달 창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조합은 시공사로부터 추가 이주비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금융 비용이 부담이다. 강남권 등 대규모 현장은 기본 이주비보다 약 1~2%포인트, 중소 사업장은 3~4%포인트 높은 금리를 감수해야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8개 사업장(5900가구)이 이런 이주 비용 증가 문제에 직면할 전망이다. 강남권의 A 사업장은 조합원당 3200만원의 이자 부담이 더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시공사의 재무 상태가 열악해 추가 이주비 조달이 불확실한 사업장도 여럿 있다. 주로 강북권 중소 규모 정비사업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총 23개 사업장(2만2100가구)은 이처럼 ‘이주 비용 증가+사업 지연’ 문제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추가 이주비 규모가 690억원으로 추정되는 관악구 B 재개발 조합은 시공사와 보증 협의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계약서상 시공사의 보증은 임의 사항인 만큼 사업이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 모아타운은 사업 중단 위기
아예 재개발 중단 위기에 내몰린 사업장도 4곳(1900가구)이나 된다. 중랑구 면목동의 한 모아타운 사업장은 시공사가 신용도 하락 우려 등을 이유로 조합에 지급보증 불가를 통보해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금천구와 구로구의 소규모 재건축 조합은 “이주비 문제로 명도소송 같은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주비 대출은 일반 주택담보대출과 구분해 LTV 70%를 적용해야 한다는 게 서울시 주장이다.올해 이주를 앞둔 사업장 중에선 수요자 선호도가 높은 대단지가 많다. 강남구 개포주공5단지(1279가구), 양천구 신정4구역(1713가구), 동작구 노량진3구역(3897가구), 강서구 방화3구역(1413가구), 노원구 상계2구역(1986가구), 서대문구 북아현2구역(2862가구) 등이 대표적이다. 내년에도 강남구 개포주공6·7단지(2698가구), 영등포구 신길2구역(2550가구) 등 1만5400여 가구(26곳)가 이주를 계획 중이다. 이 사업장이 이주와 철거를 신속히 진행하면 착공과 분양 시점을 1년가량 앞당길 수 있어 부동산 시장 불안 해소 효과가 크다.
하지만 정부는 이주비 대출 규제 완화를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주택 공급의 약 80%가 민간 재건축·재개발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만큼 정부가 조만간 내놓을 공급 대책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합이 이주 비용 증가와 사업 지연 때문에 불어난 사업비를 분양가에 태울 공산이 큰 만큼 최종 주택 수요자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