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증권은 2023년 6월 무궁화신탁 오너인 오창석 회장에게 이 신탁사 주식을 담보로 1500억원 대출을 주선하면서 1359억원을 빌려줬다. 대출 직후 비상장사 담보 대출을 구조화해 기관 및 개인 고객에게 440억원가량을 재판매(셀다운)했다. 대출 담보는 오 회장이 보유한 무궁화신탁 경영권 지분(50%+1주)이다.
2022년 9월 레고랜드 사태가 터진 후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무궁화신탁 경영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대출 집행 5개월 만에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했지만 반대매매 같은 채권 회수 절차를 밟지 못했다. 상장 주식과 달리 유동성이 없는 비상장사 주식을 담보로 개인에게 거액을 빌려줘 위기를 자초했다. SK증권 자기자본(5780억원)의 23%에 이르는 거액을 개인에게 대출하면서 이사회 결의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불완전판매 논란도 일고 있다. 비상장사를 담보로 대규모 대출이 나간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이를 구조화 상품으로 판매한 것 자체가 다른 증권사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거래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원금을 상환받지 못한 투자자의 보상 요구가 빗발치자 SK증권은 작년 말 피해 고객의 투자금 30%(132억원)를 가지급금 형태로 돌려준 것으로 확인됐다. SK증권은 “대출 회수를 위해 무궁화신탁 경영권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SK증권은 2018년 SK그룹에서 분리돼 사모펀드(PEF) J&W파트너스에 매각됐다.
무궁화신탁 위해 규정 바꿨나 …자기자본 23%를 태웠다
대출 사실 숨긴 SK증권
증권회사가 비상장사 주식을 담보로 개인에게 대출을 해주는 것은 드문 일이다. 상장사는 담보 가치가 떨어지면 시장에서 언제든 반대매매로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지만 비상장사의 경우 구조적으로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상당수 증권사에서 비상장사 주식담보대출 자체를 금지하거나 자제시키는 배경이다.대출 사실 숨긴 SK증권
SK증권도 원래 비상장사를 담보로 대출을 할 수 없었다. 내부 규정에서 ‘신용거래를 할 수 있는 증권은 증권시장에 상장된 주식 및 상장지수펀드(ETF)에 한한다’고 제한을 뒀다. 하지만 2019년 7월 ‘대출금 회수가 가능하다고 집행위원회가 심의·의결한 비상장 주식에 대해서는 신용거래가 가능하다’고 규정을 바꿨다. 에프티이앤이가 코스닥시장에서 상장폐지되며 이 회사 대주주에게 50억원 주식담보대출을 실행한 SK증권도 손실을 봐 리스크 관리 강화를 주문했을 당시 거꾸로 비상장사 주식담보대출 제한을 해제한 것이다.
오창석 무궁화신탁 회장에 대한 주식담보대출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규정 개정과 대출 결재를 같은 날 했다. 처음엔 대출 규모가 크지 않았다. 무궁화신탁 주식을 담보로 130억원을 빌려줬다가 회수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출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초대형 부실로 이어졌다. 무궁화신탁을 둘러싼 SK증권 부실은 철저하게 숨겨져 왔다. 자체 리스크 관리 같은 내부통제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 레고랜드 사태에도 대출 늘려
오 회장에게 빌려준 자금은 2021년 6월 1150억원으로 급증했다. 오 회장의 기존 빚 1000억원 상환자금과 함께 2년간 받아야 할 이자 150억원을 대출해 줬다. SK증권 대출금은 선순위 330억원(금리 연 6.5%), 후순위 280억원(연 11.0%)이었고, 나머지는 셀다운(재판매)했다. 전우종 SK증권 사장은 “당시 부동산 경기 호황을 토대로 신탁사 실적이 괜찮았다”며 “비상장사지만 문제가 생기면 경영권을 매각해 충분히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부실이 터진 것은 2023년 6월 대출 건이다. 2년 전 대출을 갚기 위한 리파이낸싱(재조달)이었다. 2022년 9월 레고랜드 사태까지 터지면서 부동산 경기가 직격탄을 맞았지만 오히려 대출금을 1500억원으로 늘렸다. 오 회장은 기존 대출을 한 푼도 상환하지 않았다. SK증권은 대출원금에 2년 동안 받을 이자 335억원을 더해 1500억원을 주선했다. 기관 및 개인 고객에게 440억원어치를 팔았다. SK증권 대출금은 선순위 519억원(연 9.5%), 후순위 350억원(연 15.0%)으로 커졌다. 계열사 MS저축은행(8억원)과 관계사 NBH캐피탈(25억원) 대출금까지 합치면 902억원에 이른다.
신탁업계 관계자는 “2023년 부동산신탁사 전반이 비상경영에 들어간 상황에서 무궁화신탁 주식을 담보로 개인에게 1500억원을 빌려줬다는 건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부실이 터지기까지 5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2023년 11월 무궁화신탁은 약속한 영업용순자본비율(NCR) 300%를 맞추지 못해 기한이익상실(EOD) 상태에 빠졌다. 이듬해 금융위원회는 무궁화신탁에 경영개선 명령을 내렸다. 작년 6월 대출 만기가 도래한 이후 사실상 디폴트 상태다. SK증권은 지금까지 EOD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유예하고 있다. SK증권은 2년 전부터 대출금 회수를 위해 무궁화신탁 경영권 매각을 추진했지만 매수인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 금감원도 몰랐다
SK증권은 무궁화신탁 부실 대출을 꽁꽁 숨겼다. 금융감독원 역시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소 증권회사에 대한 금융감독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상장기업인 증권사 내부통제에 큰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금감원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증권업계에서는 비상장사 대출도 이례적이지만 자기자본 대비 지나치게 많은 자금을 빌려준 점도 미스터리라는 지적이 많다. 오 회장 개인에 대한 대출 규모는 2023년 기준 자기자본의 23%에 이른다. 1000억원 넘는 주식담보대출 자금을 집행하면서 이사회 결의도 거치지 않았다. 한 대형 증권사 리스크 관리 담당자는 “단일 대출 건이 1000억원을 넘으면 대표이사 참석하에 반드시 이사회를 통과해야 한다”며 “비상장사 담보로 그런 대출을 내주는 건 대형사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오 회장이 대출 당시 SK증권 대표이사를 맡았던 김신 부회장의 서울대 경영학과 82학번 동기라는 점에서 증권업계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SK증권 측은 “2023년 무궁화신탁 매각 가능성 등을 보고 리파이낸싱했지만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고 했다.
노경목/박종관 기자
▶SK증권
2018년 7월 SK㈜가 보유하고 있던 SK증권 지분 10%를 사모펀드(PEF) 운용사 J&W파트너스가 인수하며 SK그룹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왔다. SK그룹의 일반 지주회사 전환과 관련해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 요건을 지키기 위한 조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