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주 정기국회 개회 첫날 기습적으로 중의원을 해산했다. 오늘 선거 공고를 하고 다음달 8일 총선을 치른다. 해산 후 16일 만에 하는 투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단 기록이다. 중의원 의원의 재직 일수는 454일로 그 역시 전후 가장 짧다. 4년 임기의 3분의 1도 채우지 못했다. 중의원 의장의 해산 선포 순간, 졸지에 실직자가 된 자민당 의원들은 그래도 “반자이”(만세삼창)를 외치며 전의를 다졌다. 하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불만이 일거에 터져 나올 수 있다. 자민당 단독 과반 확보로 장기 집권의 길을 열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보다 더 짧은 단명 총리에 그칠지, 다카이치는 ‘위험한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총리직을 걸겠다”고 배수진을 친 다카이치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일까. 내각제인 일본의 총리는 언제든 중의원 해산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명분 없는 해산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다. 122조엔의 올해 예산안(2026년 4월~2027년 3월) 심의를 미루고 선거전에 돌입했다는 점에서 이번 해산은 극히 이례적이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경제와 고물가 대책이 최우선이라던 다카이치다. 야당은 물론 여권에서도 ‘자기 사정 해산’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상 다카이치의 ‘원맨쇼 선거’다. 내각 지지율은 60~70%대로 고공행진 중인데 자민당 지지율은 30% 안팎에 머물러 있다. 특히 자민당을 외면하던 청년층에 다카이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지금이라면 이길 수 있다”는 판세 분석을 자꾸 들으니 자신감도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이나 지지율에 취하면 민심은 언제든 무섭게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을 잊는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당장 해산 선언 이후 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이 57%로 10%포인트나 급락했다.
성공 사례가 있긴 하다. 2017년의 아베 신조다.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그는 임시국회 첫날 해산을 선언하며 저출생과 북한 미사일이라는 ‘국난 돌파’를 명분 삼았다. 그래도 자민당이 대승을 거뒀으니 유권자가 늘 올바른 선택을 하는 건 아니다. 다카이치는 이번에 극소수 측근과만 상의했는데 특히 ‘아베의 복심’이던 이마이 다카야 내각관방 참여(자문역)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아베의 8년 집권을 만들어 낸 인물이다.
아베처럼 자민당의 압승을 이끈다면 다카이치는 의석수와 지지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손에 쥔다. 취임 후 두 번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태극기에 공손히 목례하고 이재명 대통령과 드럼 합주를 하던 모습과는 다른, 강경 우익의 또 다른 얼굴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국론을 둘로 쪼갤 정도의 대담한 정책, 개혁’에 도전하고 싶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참패로 야당에 정권을 넘겨주는 일도 배제할 수 없다.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과 26년간 자민당의 연정 파트너였던 공명당의 중도 연합이 ‘태풍의 눈’이 될지, ‘찻잔 속 태풍’에 그칠지가 관건이다. 만약 다카이치가 패배하면 이 대통령은 취임 1년도 안 돼 세 번째 일본 총리를 상대해야 한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놓고 “한국은 골대가 자꾸 움직인다”고 공격하곤 했는데, 이제는 우리가 “일본은 걸핏하면 골키퍼가 바뀐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중의원 선거에 들어가는 비용은 850억엔 이상이다. 한국처럼 선거비를 보전해주지 않으니 그나마 이 정도다. 다카이치의 ‘8000억원짜리 승부수’는 과연 통할까. 우리로서는 우경화 색채가 짙어질 자민당의 독주도, 일본 정국의 혼란 장기화도 달갑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서로를 필요로 하는 한국과 일본이다. 선거 결과가 어떻든 양국이 다시 얼굴을 붉히는 관계로 돌아갈 일이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