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실르엘'의 경우 전세가 조정은 기대하기 어려워요. 인기 많은 잠실 안에서도 신축 아파트인데다, '르엘'이 적용된 하이엔드 브랜드 단지라 집주인들이 콧대가 높아요."
서울 신천동 소재 한 공인 중개 관계자는 26일 최근 잠실르엘 전세 시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과거엔 대단지 입주가 시작되면 전셋값이 한풀 꺾이는 게 공식처럼 여겨졌지만, 올해 서울 전세 시장에서는 이러한 '입주장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0일부터 입주를 시작한 서울시 송파구 신천동의 잠실르엘이 대표적이다. 총 1865가구 규모의 대단지지만, 전세 시세는 기존 주변 단지보다 평형별로 1억~1억5000만원가량 높게 형성됐다.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졌음에도 집주인들이 가격을 낮추려는 기색이 없다는 게 현장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실제로 잠실 대장 단지로 꼽히는 '잠실 엘스'의 경우, 전용 59㎡ 전세가 지난 1월 기준으로 10억000만~11억원 선에서 계약됐다. 전용 84㎡ 전세가는 12억5000만원 안팎이다. 반면 잠실 르엘은 59㎡는 12억5000만~13억원, 전용 84㎡는 15억5000만~16억원 선으로 형성되고 있다. 전세 대출이 불가능해 전액 현금으로 보증금을 마련해야 하고, 거주 기간도 2~3년으로 제한되는 '일반분양 물량'은 이보다 1억원가량 호가가 낮지만, 이마저도 물량이 거의 없다.
신천동의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지금 집주인들은 전·월세를 천천히 빼더라도 1억~2억원 더 받고 싶어 하는 분위기"라며 "한 번 전세를 주면 '2+2' 계약으로 장기 거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지금 가격을 낮추려는 사람은 드물다"고 귀띔했다
같은 동의 B 공인 중개 관계자 역시 "지금 호가가 상당히 올라 있는데, 여유 자금이 있는 집주인이 많아서 그렇다"며 "4월 25일 입주가 끝나기까지 일부 조정은 있을 수 있지만, 오히려 입주 막바지에는 현금 여력이 있는 집주인만 남아 전셋값이 더 올라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전통적으로 대단지 입주는 인근 전셋값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실거주 요건 강화와 서울 전반의 전세 물량 감소가 맞물리면서 이 같은 공식이 통하지 않는 모습이다.
아파트 정보 제공 앱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송파구 전·월세 물건은 이날을 기준으로 7375건이다. 한 달 전(6912건)과 비교해 6.6% 증가했다. 그러나 서울 전체를 놓고 살펴보면, 전·월세 물건은 1달 전 4만466건에서 4만2112건으로 5.8% 감소했다.
시계열을 늘려 보면, 전·월세 품귀 현상은 더욱 뚜렷하다. 서울시의 전·월세 물량은 1년 전 4만9382건에서 4만2112건으로 14.8% 줄었다. 특히 월세를 제외한 전세 물량은 3만135건에서 2만1876건으로 27.5% 급감했다.
전세난에 따른 전셋값 상승 움직임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월 셋째 주(19일) 기준 서울 송파구 전셋값은 0.01% 오르며 54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도 같은 날 104.7을 기록해 전주(104.5)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지수가 기준선인 100을 웃돈다는 것은 전세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있다는 의미다.
대단지 신축 공급이 없는 지역에서는 '전세 대란'이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최근 서울 강서구에서 전세 매물을 알아보던 한 30대 신혼부부는 "새로 구하려니 조건에 맞는 전세가 없었다"며 결국 이사를 포기하고 기존 집의 전세금을 올려주는 쪽을 택했다.
수도권까지 넓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를 예로 들면, 망포동에 있는 2140세대 단지인 '힐스테이트 영통'은 이날 기준으로 전세 매물이 단 1개에 그쳤다. 같은 동에 있는 '영통아이파크캐슬1단지'(1783세대)도 전세 물건이 4개뿐이고, '영통아이파크캐슬2단지'(1162세대)는 전세 물건 2개가 전부다. 776세대의 '신나무실극동, 풍림'은 전세 물건이 아예 자취를 감췄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 리서치랩장은 "전반적인 입주 물량 감소로 인해 대량 입주가 있더라도 그 지역 수급 안정 정도에 그치는 정도이지, 시장 전체 가격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며 "여기에 오피스텔이나 연립다세대 등 아파트 대체제들의 공급까지 줄어들면서, 전국적으로 전셋값이 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함 랩장은 "한편으로는 정비사업으로 인한 자연 멸실은 계속 이뤄지고 있다"며 "이에 비해 주택 공급의 균형은 맞지 않는 상황이라 전셋값 상승 압력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올해 서울 입주 물량은 전년보다 48% 줄어든 1만6412세대로 예정되어 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