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신약은 반드시 완전히 새로운 물질에서만 탄생하지는 않는다. 이미 검증된 약물을 어떤 질환에, 어떤 방식으로, 어떤 임상 전략으로 재정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가치가 만들어진다. 기술 그 자체보다 신약개발 전략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같은 물질이라도 시장이 요구하는 방향과 치료 환경을 정확히 읽어낼 경우 기존 약은 새로운 혁신신약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최근 큐라클의 신장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CU01이 업계와 의료진의 주목을 받는 배경 역시 이러한 전략적 신약개발의 사례로 해석된다. 국내에서 진행된 당뇨병성 신증 임상 2b상에서 의미 있는 임상 결과가 확인되면서, 약물의 효능뿐 아니라 CU01이 어떤 개발 철학과 전략을 통해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CU01은 전통적인 신약 개발 경로와는 다른 방식으로 개발 중인 후보물질이다. 완전히 새로운 화합물을 처음부터 설계하는 방식이 아니라, 글로벌 임상 현장에서 오랜 기간 사용돼 온 성분을 신장질환 치료제로 재설계하는 약물 재창출(드러그 리포지셔닝) 전략이 적용됐다. 이미 사람에게 투약돼 축적된 안전성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발 리스크를 낮추는 동시에 질환 특성에 맞는 새로운 임상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접근이다.
드러그 리포지셔닝은 신약개발 역사에서 여러 차례 그 가능성을 입증해 왔다. 비아그라는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되던 약물이었으나, 임상 과정에서 관찰된 효과를 계기로 발기부전 치료제로 적응증이 전환되며 글로벌 블록버스터로 자리 잡았다. 기존 성분이라도 임상적 쓰임과 시장을 새롭게 정의할 경우 전혀 다른 성공 경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미녹시딜 역시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되던 약물이 탈모 치료제로 재탄생한 경우다. 임상 과정에서 체모 증가라는 현상이 관찰되면서 적응증이 전환됐고, 현재는 남성형·여성형 탈모 치료의 표준 치료제로 장기간 사용되고 있다. 초기 개발 목적과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약물의 가치를 확장한 사례로 평가된다.
탈리도마이드는 보다 극적인 전환을 보여준다. 한때 심각한 부작용으로 시장에서 퇴출됐던 약물이 이후 면역 조절과 항혈관신생 기전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다발골수종 등 혈액암 치료제로 다시 개발됐다. 엄격한 사용 관리 하에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제로 활용되며, 약물의 평가는 개발 전략과 적응증 설정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CU01 역시 이러한 드러그 리포지셔닝의 맥락에서 출발한 약물이다. CU01의 주성분인 디메틸푸마르산염(DMF)은 다발성 경화증과 건선 치료제로 글로벌 임상 현장에서 장기간 사용돼 온 성분이다. DMF는 Nrf2 경로를 활성화해 항염증·항산화 효과를 나타내는 동시에, 신장 섬유화를 촉진하는 TGF-β 신호를 조절하는 기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환자 투약을 통해 축적된 풍부한 안전성 데이터 역시 CU01의 중요한 강점으로 평가된다.
CU01은 경북대학교 내분비내과 연구팀의 연구를 통해 신장질환 치료제로 개발이 시작됐다. 연구팀은 DMF의 기전을 신장질환의 병태생리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당뇨병성 신증이라는 미충족 의료 수요가 큰 영역에 적용했다. 당뇨병성 신증은 단순한 혈류 이상이 아니라 염증, 산화 스트레스, 섬유화가 복합적으로 누적되며 신장 기능이 점진적으로 손상되는 질환이라는 점에 주목한 접근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당뇨병성 신증 치료 환경이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는 nsMRA 계열 약물은 칼륨 수치가 높은 환자에게 사용이 어렵고, RAAS 억제제를 이미 복용 중인 환자에서는 병용 시 안전성 부담이 커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많은 당뇨병성 신증 환자들이 기존 치료제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단백뇨가 다시 증가하거나 신장 기능이 점진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을 겪는다. 전문가들은 현재 쓰이는 치료제들이 주로 사구체 압력이나 혈류를 조절해 질환 진행 속도를 늦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한계로 꼽는다.
이와 달리 CU01은 기존 치료제와 다른 작용 지점을 갖는 약물로 평가된다. 혈역학적 조절이 아니라, 신장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손상 과정 자체에 개입하는 기전이라는 점에서다. 염증과 산화 스트레스, 섬유화로 이어지는 병리적 흐름을 조절하는 접근은 기존 치료로 충분한 효과를 보지 못하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축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발표한 임상 2b상 결과는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이터로 해석된다.
CU01의 또 다른 강점으로는 장기 사용 가능성이 거론된다. DMF는 이미 글로벌 임상 현장에서 장기간 처방돼 온 성분으로, 만성질환인 신장질환 치료에서 중요한 장기 복용 안전성 측면에서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평생 관리가 필요한 질환 특성을 고려할 때, 적용 가능한 환자 범위가 넓은 약물이라는 점도 임상적 장점으로 꼽힌다.
임상 2b상에서 확인된 결과를 계기로 CU01은 단순한 후보물질을 넘어, 전략적 드러그 리포지셔닝이 만들어낸 신장질환 치료 옵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새로운 물질이 아니라 치료 환경과 시장의 변화를 읽어낸 개발 전략이 약물의 가치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다. CU01이 향후 신장질환 치료 영역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에 업계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김유림 기자 you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