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령인 그린란드의 병합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그린란드에 병력을 보낸 유럽 8개국에 다음달부터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관세’ 카드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유럽 동맹국 간 긴장이 한증 고조되고 있다. ‘협상용 전술’일 수 있는 만큼 실제 관세 부과를 단정하긴 이르지만 기존 유럽연합(EU)과의 관세 협상이 순식간에 무의미해지면서 트럼프 정부와 맺은 협상 효력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미국에 돌려줘야”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SNS에 올린 글에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가 목적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린란드로 향했다”며 “이는 지구의 안전과 안보, 생존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다음달 1일부터 8개 국가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모든 상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6월 1일부터는 관세를 25%로 인상할 것”이라며 “그린란드의 완전하고 총체적인 매입에 관한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부과된다”고 덧붙였다.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평화가 위태롭다. 중국과 러시아가 그린란드를 원하고 있고, 덴마크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미국만이 이 게임에 참여할 수 있고 매우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다”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이 땅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덴마크가 그린란드를 미국에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그는 “관세나 다른 어떤 형태의 대가를 부과하지 않고 덴마크와 EU의 모든 회원국, 기타 국가들에 보조금을 지급해왔다”며 “수 세기가 지난 지금, 덴마크가 돌려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EU 협상 무효화 위기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10% 관세가 기존 상호관세 10%에 추가로 부과하는 것인지, 기존 협정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등에 대해 아직 뚜렷이 밝혀진 내용은 없다. 영국은 별도 관세 협정(관세율 10%)을 체결했지만, EU(15%)는 단일 시장으로 상품이 자유롭게 오간다. 이 중에서 7개국 상품만 골라내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절차적으로 까다롭고, 실효성도 떨어진다.분명한 것은 트럼프 정부와 체결한 그 어떤 협상 내용도 지켜질 것이라고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EU가 미국에 6000억달러 규모 투자를 하는 조건으로 EU에 대한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협상을 완료했다.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트럼프 정부는 기존 약속을 지키기보다 필요에 따라 재협상을 거론하고 있다.
유럽의회는 당초 이달 26∼27일 미국과의 무역협정을 표결에 부칠 계획이었으나 그린란드 갈등이 불거지면서 승인을 보류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베른트 랑게 유럽의회 무역위원장은 EU 집행위원회에 통상위협대응조치(ACI)를 발동하라고 요구했다. ‘무역 바주카포’라고 불리는 ACI는 EU나 회원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제3국에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다.
◇나토 균열 현실화하나
트럼프 정부는 동맹에게도 ‘힘의 논리’를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이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알래스카보다 25% 더 큰 땅을 100% 미국 돈으로 방어해 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미국 납세자들에게 불공정한 거래”라고 했다.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2기 들어 나토 동맹국들을 상대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해온 데 이어 이번에 그린란드를 둘러싼 관세 카드까지 꺼내 들자 나토 동맹의 결속이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관세 위협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완전히 잘못된 일”이라며 반발했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EU는 국제법을 지키는 데 항상 확고하다”며 “회원국들과 공동 대응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