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반도체, 디지털·그린 전환으로 대변되는 첨단산업 전쟁의 승패는 결국 사람에 달려 있다. 흔히 첨단산업이라 하면 화려한 연구실의 성과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기술은 산업 현장에서 구현되고 고도화될 때 비로소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그동안 우리 고등교육 체계는 역할 분담을 해왔다. 일반대학이 연구·개발(R&D)과 기획 인력 양성에 주력했다면, 전문대학은 그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는 공정과 시스템 실무 인력을 길러내는 축이었다. 첨단산업 전환이라는 거대한 파고 역시 R&D라는 설계도와 현장 구현이라는 시공 능력이 함께 맞물릴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이러한 인재 양성의 이중 구조 속에서 전문대학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실핏줄 역할을 해왔다. 제조·건설·조선·기계 등 국가 핵심 산업 현장을 지탱해 온 생산·기술 인력의 화수분이었던 셈이다. 전문대학 특유의 짧은 교육 주기와 실무 중심 커리큘럼은 변화하는 산업 지형에 즉각적인 인력 공급을 가능케 했다.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현장을 중심으로 기술을 재구성하는 전문대학의 역량은 그 가치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첨단산업으로의 전환이 일자리의 소멸이 아닌 ‘스킬 전환’의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신규 인력 양성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있다. 현재 현장을 지키고 있는 재직자와 성인 학습자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신산업에 적응시켜야 한다. 장기 학위 과정이나 고비용 재교육이 대안이 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높은 접근성과 유연성을 갖춘 직업교육 체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추진된 것이 신산업 분야 특화 선도전문대학 지원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전문대학들은 신산업 수요에 맞춰 학과를 과감하게 개편하고, 기업과 교육과정을 공동 설계하며 융합 전공과 단기 직무 과정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왔다. 지난 1·2주기 사업을 통해 전문대학 기반의 첨단 직업교육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정책 모델이라는 점이 입증됐다.
현장에서 이 사업을 지켜본 입장에서 보면 이는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전문대학 교육의 질적 전환을 이끌어낸 ‘촉매제’였다. 전문대학은 R&D 성과가 산업 현장의 실질적 부가가치로 이어지도록 돕는 핵심 연결고리다. 이제 이 검증된 모델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지속하느냐가 과제다.
새 정부가 재구조화 중인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는 이 모델을 지역 내 확대·심화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다. 다만, 전문대학 기반의 첨단 직무교육 체제를 고도화하려면 중앙 차원에서 중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지역 산업 특성을 넘어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산업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전문대학이 지역 산업 수요에 최적화된 기술 인력을 책임지는 실행 주체로 우뚝 설 수 있다. 현장의 인재가 준비될 때, 대한민국 첨단산업 전환의 속도와 완성도 역시 비약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