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걱정은 덜었으니, 납품 단가를 후려치겠다.” 세계 최대 e커머스 아마존이 새해 벽두 글로벌 공급사에 보낸 메시지의 이면을 한 줄로 요약해봤다. 1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아마존은 최근 주요 납품 벤더에 단가를 최대 30% 낮추라고 통보했다.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분위기는 딴판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율 관세가 예고되자 아마존은 공급망 붕괴를 막겠다며 제조사들의 납품가 인상 요구를 너그럽게 받아주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미국 대법원의 관세 부과 위헌 판결이 임박하고, 미·중 간 긴장이 다소 완화되자 돌변했다. 리스크가 해소됐으니 자신들이 양보한 마진을 토해내라는 것이다. 아마존의 이 같은 ‘변심’은 유통산업에서 플랫폼이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물론 기업이 수익 확대를 추구하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사안의 본질은 단순한 가격 협상이 아니다. 아마존은 재고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직매입 사업의 낮은 수익성을 골칫거리로 여겼다. 이번 관세 이슈는 그저 명분일 뿐, 실상은 공급사를 쥐어짜 수익성을 개선하거나 수수료 기반 ‘오픈마켓’으로 공급사를 내몰기 위한 전략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더 서늘한 지점은 이런 요구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국내 온라인 유통시장에서는 한국판 아마존을 꿈꾸는 쿠팡, 중국 알리익스프레스 등이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들 역시 시장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사업 초기엔 제조사들에 온갖 당근을 제시하며 입점을 유도했다. 하지만 시장점유율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 돌연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태세 전환’에 나섰다. 2022년 CJ제일제당과 쿠팡이 벌인 햇반 납품단가 분쟁은 아직도 입에 오르내릴 정도다.
아마존의 이번 요구는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부터 K뷰티 붐을 이끄는 중소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는 환율이나 유가 등 대외 변수가 조금만 바뀌어도 언제든 고통 분담이란 명목으로 단가 인하를 강요할 수 있다.
아마존의 이런 독단적인 행보에선 묘한 기시감도 든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국의 핵심 자원이나 영토마저 흥정 대상으로 삼는 초강대국의 거친 그림자가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플랫폼 비즈니스든 국제 정치든, 압도적인 힘 앞엔 영원한 동맹도 상생도 없다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결국 믿을 건 플랫폼의 선의가 아니다. 소비자가 기어코 찾아와서 사게 만드는, 대체 불가능한 상품력과 브랜드 파워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