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 인성, 이글 정민, 열정 해준. 우리는 휴민 트에요!"차가운 바다와 국경, 그리고 정보가 교차하는 도시 블라디보스토크. 류승완 감독이 선택한 곳이다. 베를린', '모가디슈'로 이어진 그의 필모그래피 위에 새롭게 더해진 영화 '휴민트'는 전작들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보다 이국적이고 낯선 풍경 속에서 새로운 긴장감을 선보일 예정이다.
'휴민트'는 비밀과 진실이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도시 블라디보스토크를 배경으로 한다. 서로 다른 목적을 품은 인물들이 한 공간에서 충돌하며, 정보전과 감정의 균열이 동시에 펼쳐지는 첩보 액션 영화다. 국정원 요원, 북한 국가보위성 간부, 북한 총영사, 그리고 정보원이 되는 여성까지 네 인물의 시선이 교차하며 서사가 확장된다.
북한과 러시아의 접경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실마리를 좇아 이 도시에 모이게 된 네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휴민트'는, 류 감독이 구축해 온 해외 로케이션 세계관을 한층 확장하는 작품이다. '휴민트'는 '베를린'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지점이 있어 호기심을 끈다.

이번 작품에서 류승완 감독이 중심에 둔 키워드는 구원과 희생이다. 서로 다른 목적과 신념을 지닌 인물들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관계의 균열과 선택의 순간을 따라가며,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감독은 이러한 주제에 집중하기 위해 화려한 기교보다는 절제된 연출을 택했다. 장면을 빠르게 소비하기보다는 인물과 상황을 충분히 쌓아 올리는 방식이다.
12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 입구에서 열린 '휴민트' 제작보고회에서 류 감독은 "이번 영화의 대표 키워드는 재미와 긴장"이라며 "촬영이 끝난 뒤 모니터를 보면서도 저도 모르게 움찔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반신욕 정도하고 오시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해 기대감을 높였다.
조인성은 국정원 블랙 요원 조 과장 역을 맡았다. 조 과장은 냉철한 판단력으로 임무를 수행해 온 인물이지만, 정보원을 잃은 이후 트라우마와 인간적인 갈등을 안고 움직인다.
'모가디슈', '밀수'에 이어 '휴민트'까지 함께하게 된 조인성은 류승완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표현에 대해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감독님이나 제작사 외유내강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며 "저보다 감독님과 더 많은 작품을 함께한 배우들이 있다"고 말했다. 황정민, 정만식 등을 언급하며 "그 선배들을 이길 수는 없기 때문에, 페르소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세 번째로 류승완 감독과 호흡을 맞춘 소감에 대해서는 이전 작품에서 쌓은 신뢰를 언급했다. 조인성은 "전작들이 해외에서 오랜 시간 체류하며 찍은 작품들이라 우리들만의 정이 있었다"며 "작업을 거듭하면서 더 가까워졌고, 서로를 잘 알다 보니 감독님이 원하는 방향을 더 잘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액션 연기에 대한 부담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류승완 감독님은 액션을 굉장히 잘 아시는 분"이라며 "손을 뻗는 각, 맞았을 때의 리액션 같은 디테일을 하나하나 짚는다. 몸을 사리지 않으면 오케이를 받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라트비아 현지 스태프들도 감독님이 직접 액션 시범을 보이는 걸 보고 놀랐을 것"이라며 "그걸 보니 배우로서 더 몸을 사릴 수 없었다"고 했다.
조 과장의 액션에 대해서는 "품위 있게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런 액션을 어디서 팔면 사서 하고 싶을 정도"라고 웃으며 말했다.
박정민은 북한 국가보위성 조장 박건을 연기했다. 박건은 냉정하고 기민한 판단력으로 임무를 수행해 온 인물이지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채선화와 마주한 이후 감정의 균열을 겪는다. 박정민은 캐릭터에 대해 "감정적인 균열을 느끼기 전과 후의 액션이 다르다"며 "선화와 느끼는 감정도 있지만 조 과장과의 브로맨스도 있다. 감정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류승완 감독과의 작업 과정에 대해 박정민은 "류승완 감독님은 우리나라 액션을 대표하는 감독"이라며 "연기를 앞두고 깊이 있는 연습이 필요했는데, 현장에서 저만 보면 합기도를 거셨다"고 말했다. 이어 "방에 찾아와서 이렇게 하는 거라며 손을 꺾으시더라. 멀리서 보면 조카 괴롭히는 삼촌 같았지만, 그만큼 많이 배웠다"고 회상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박정민의 달라진 인상도 언급됐다. MC 박경림이 외모 변화를 칭찬하자 조인성은 "인정한다. 비주얼 배우를 물려줄 때가 됐다. 차세대 비주얼 배우"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고, 박정민은 손사래를 치며 쑥스러워했다.
류 감독은 "'밀수' 당시 박정민에게 어부의 몸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벌크업 해서 어부의 근육을 요구했다. 벌크업 중 살크업을 하던 도중 정말 꼴 보기 싫은 모습을 처음 봤다"며 "이번 영화에선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귀띔했다.
신세경은 북한 식당 종업원 채선화 역을 맡았다. 채선화는 생존을 위해 정보원이 되는 선택을 하며, 영화의 감정적 중심축을 형성하는 인물이다. 신세경은 1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소감으로 "너무 많이 설렌다"며 "좋은 배우들과 함께한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난다는 점이 특히 의미 있다"고 말했다.


장기 해외 촬영에 대해서는 "집이 아닌 곳에서 중장기로 머무는 게 쉽지는 않다"면서도 "저에게는 그 시간이 오히려 즐거웠다. 한 도시에서 같은 배를 탄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는 느낌이 반짝이는 순간으로 남았다"고 밝혔다. 조인성은 "세경 씨가 영어를 잘해서 맛집 투어를 다녔다"고 귀띔했고, 박정민은 "로컬 헬스장까지 끊고 다녔다. 거의 동네 사람이었다"고 덧붙여 웃음을 더했다.
소통의 어려움에 대해서 신세경은 "네이티브는 아니라 말이 막히는 순간도 있었지만 재밌게 잘 해냈다"고 말했고, 조인성은 "회식 자리에서 저희의 통역을 맡아줬다. 덕분에 현지 스태프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박정민은 "저는 어려움이 없었다. 말을 안 걸었다"고 받아쳐 좌중을 폭소케 했다.
류 감독은 "촬영 도중 외국 배우와 밥을 먹을 때 제가 영어로 이야기하면 신세경이 다시 영어로 통역해 깜짝 놀랐다"고 거들었다.
극 중 박정민과 신세경은 멜로 라인이 있다. 박정민은 "신세경은 참 노련하고 단단한 배우"라며 "데뷔도 빠르고 하니 안정적인 느낌을 받았는데, 대면해 연기할 때 많이 놀랐다"고 했다. 그는 "눈에서 나오는 매력, 에너지가 마법 같더라. 상대를 집중시키는 면모가 있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신세경은 "항상 바쁜 현장에서도 자기 것을 하는 모습을 보고 지혜롭다,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관객으로서 모니터를 봤을 때 박건(박정민)이 너무 멋있어서 놀랐다"고 전했다.


박해준은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북한 총영사 황치성 역으로 등장한다. 권력과 욕망에 충실한 인물로, 극의 긴장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았다. 박해준은 "이번 작품을 통해 총을 양껏 쏴 봤다"며 "군대에서보다 더 많이, 람보처럼 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쏘면 백발백중"이라며 "액션이라고 하면 볼펜 액션 하나 있다"고 귀띔했다.
배우들의 앙상블은 이번 작품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다. 류승완 감독은 "조 과장과 박건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조인성과 박정민을 염두에 두고 출발한 캐릭터"라며 "'밀수' 촬영 당시 두 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를 꼭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류승완 감독은 캐스팅 배경에 대해 "박해준 배우의 영 '4등'을 보고 이런 배우가 어디서 나타났나 싶었다"며 "거의 매달리다시피 해서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신세경에 대해서는 "포토제닉한 이미지와 목소리의 매력이 있고, 무엇보다 촬영하며 성실함에 놀랐다"고 평가했다.
액션의 색깔도 캐릭터마다 다르게 설계됐다. 신세경은 이를 정리하며 "조 과장의 액션은 시원시원, 박건은 이글이글, 황치성은 열정열정"이라고 표현했고, 배우들은 즉석에서 "시원 인성, 이글 정민, 열정 해준"이라며 웃음을 나눴다. 박해준이 이를 헷갈려 "욕망 해준"이라고 말하자 조인성은 "결성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렇다"고 거들어 웃음을 자아냈다.
류승완 감독은 전작 '베를린'과 비교해 이번 작품이 지닌 감정의 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인물 간 관계의 깊이와 복잡한 감정 상태가 한층 풍부하게 살아났다고 평가했다. 이어 "감정의 상태들, 관계의 어떤 깊이나 복잡함 이런 것들을 배우분들이 풍부하게 표현했다"며 "관객분들이 보기에 감정의 파도랄와 같은 느끼는 것들이 '베를린'보다 더 적게 느끼지는 않으실 것 같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류승완 감독은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하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조인성은 "이국적인 미장센과 뜨거운 배우들의 연기를 큰 스크린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관전포인트를 전했다. 박정민 또한 "서늘하게 시작해 뜨겁게 마무리되는 감정으로 극장을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휴민트'는 오는 2월 11일 개봉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