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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IT·금융 시장의 최대 화제는 네이버와 두나무의 포괄적 주식교환이다. 검색·쇼핑·페이를 거느린 네이버와 국내 1위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가진 두나무가 한 울타리 안에 들어가면 시가총액 20조원급 핀테크 공룡이 탄생한다.
네이버파이낸셜이 두나무를 약 100억 달러(약 13조 원)로 평가하는 딜을 추진한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업계에서는 카카오에 이은 '제2의 플랫폼 금융 제국'이라는 말이 나온다. 단순한 기업 결합을 넘어 한국 디지털 금융의 판을 바꾸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간편결제·증권·가상자산을 잇는 핀테크 인수합병(M&A)처럼 보이는 이 딜의 진짜 쟁점은 따로 있다. 플랫폼이 스스로 '디지털 화폐'를 만들어 결제·투자·데이터를 한 손에 쥘 수 있다는 점이다. 공정거래·금융규제·개인정보보호가 동시에 걸린 한국형 '빅테크 머니' 실험이 시작된 셈이다. 이 구조를 어떻게 설계·규율하느냐는 향후 자본시장과 플랫폼 경쟁의 풍경을 바꿀 수 있다.
스테이블 코인, 네이버 생태계의 '내부 화폐' 되나
두나무는 업비트라는 인프라를 통해 이미 국내 암호화폐 시장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업비트는 국내 암호화폐 거래액의 약 71.6~72%를 차지했고, 반년 동안 처리한 거래액만 833조 원에 달한다. 국내 암호화폐 이용자 1017만 명 가운데 약 53%가 업비트 이용자라는 추정도 있다. 코인 시장에서는 업비트가 '국내용 표준' 플랫폼에 가깝다.여기에 네이버페이를 얹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네이버페이는 2024년 기준 약 3068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해 한국 인구의 60%에 육박한다. 2025년 1분기 네이버페이 결제액은 19.6조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4% 증가했다.
네이버와 두나무라는 두 축이 합쳐진다면, 이들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생태계 전반의 결제·정산 수단으로 삼는 시나리오는 충분히 현실적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원화를 코인으로 충전해 업비트에서 투자하고, 네이버 쇼핑·가맹점에서 결제하는 '내부 화폐'를 쓰게 된다. 네이버포인트가 한 단계 진화해 가격이 안정된 '디지털 머니'로 바뀌는 그림이다.
2025년 기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약 2500억~3000억 달러 수준으로 성장했다. 온체인 기준 결제·송금 거래액은 올 상반기에만 8.9조 달러를 넘었다. 기업의 실험을 넘어 중견국 국내총생산(GDP)에 맞먹는 규모다. 네이버?두나무가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다면 이는 글로벌 트렌드를 한국판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비록 법정통화는 아니지만, 경제적 효과만 보면 사기업이 발행하는 준(準) 화폐에 근접한다.
'플랫폼 화폐권'의 잠금효과와 데이터 독점
스테이블코인이 네이버 생태계의 기본 수단이 되면 강력한 록인(lock?in) 구조가 형성된다. 네이버?두나무 코인 결제에는 수수료·할인을 몰아주고, 경쟁 결제 수단에는 불리한 조건을 붙인다면 이는 자사 우대(self?preferencing), 끼워팔기(tying), 배타적 거래(exclusive dealing)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플랫폼 안에서 화폐 선택이 사실상 강제되는 순간, 이용자의 선택권과 경쟁사업자의 진입 가능성은 동시에 줄어든다.더 큰 문제는 데이터다. 동일한 토큰이 결제·투자·리워드의 공통 인프라가 되면 네이버는 검색·쇼핑·콘텐츠 이용 데이터를, 두나무는 자산 포트폴리오·거래 데이터를 함께 보게 된다. 소비 패턴과 자산 성향을 모두 아우르는 초(超)정밀 데이터 세트가 되는 셈이다.
블록체인 정보보안 업체 TRM 랩스(Labs) 등은 2025년 스테이블코인 사용 데이터가 전 세계 자금 이동의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한국에서는 그 역할을 특정 플랫폼 연합이 독점적으로 맡을 수 있는 구조가 열리는 것이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광고·대출·투자 추천은 경쟁사가 따라잡기 어려운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금융위·공정위의 시각
흥미로운 지점은 금융당국과 공정거래위원회가 같은 딜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준비금 적립과 소비자 보호 요건을 지킨다면 스테이블코인을 '규제 틀 안에서 관리되는 민간 디지털 머니'로 볼 수 있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시가총액 수십조 원 규모의 스테이블코인이 통용되고 있는 흐름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다.반면 공정거래 관점에서는 결제·투자·데이터가 모두 한 플랫폼으로 몰리는 상황을 '디지털 통화 인프라를 특정 기업집단이 사실상 장악하는 구조'로 볼 수 있다. 검색에서의 자사 우대나 앱 마켓 결제 강제, 배달앱 최혜국대우(MFN)처럼 플랫폼이 자사 인프라를 활용해 경쟁 수단을 배제하는 행태가 스테이블코인 영역에서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규제는 안전성과 소비자 피해 방지에, 공정거래는 경쟁과 시장지배력에 초점을 맞춘다. 이 때문에 같은 상품을 두고도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네이버?두나무 딜이 남길 질문
이번 주식교환은 빅테크와 크립토의 결합, 디지털 머니 인프라, 데이터 결합과 플랫폼 지배력이 한 번에 만나는 이례적인 사건이다. 업비트가 이미 국내 거래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네이버페이가 분기 20조 원 규모를 처리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스테이블코인까지 품게 된다면 이는 사기업 플랫폼의 화폐 설계 실험으로 봐야 한다. '누가 한국의 디지털 머니 레일을 설계하고 지배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이 딜이 한국 디지털 금융의 도약이 될지, 새로운 독점 플랫폼의 출현으로 이어질지는 지금의 설계에 달렸다. 한 기업집단이 결제·투자·데이터·화폐 기능까지 한 손에 쥐는 구조를 허용한다면, 그 대가로 어떤 공적 통제와 투명성을 요구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플랫폼이 돈까지 만들려 할 때,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서 제동을 걸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내야 한다. 공정거래와 금융규제가 어떤 해법을 제시하느냐가 네이버?두나무 딜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