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식 물가 상승으로 점심 한 끼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호텔 F&B(식음료) 매장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김치찌개, 칼국수 같은 서민 메뉴 가격이 오르면서 그동안 비싸다고 여겨졌던 호텔 내 일반 식음료 매장이 오히려 '합리적 선택지'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일반 음식점과 호텔 식음 매장 간 가격 차이가 줄어든 탓에 돈을 좀 더 내더라도 만족도 높은 곳을 찾겠다는 소비 심리가 커졌다.
30일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올해 11월 기준 서울 지역에서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외식 메뉴 8종의 평균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3~5%대 상승했다. 김밥 평균 가격은 3500원에서 3700원으로 5.7%, 칼국수는 9385원에서 9846원으로 4.9% 상승했다. 직장인 등이 즐겨 찾는 김치찌개 백반 가격도 8577원으로 전년(8192원) 대비 4.7% 뛰었다. 대표적 외식 메뉴인 삼겹살(200g 기준) 가격 역시 2만83원에서 2만861원으로 3.9% 올랐다.
서울 시내 음식점에서 점심 한 끼를 해결하려면 평균 1만원대, 비싼 경우 2만 원 안팎 비용을 지불해야 할 정도로 외식 물가가 크게 뛰었다. 그동안 문턱이 높다고 여겨졌던 호텔 내 일반 식음매장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배경이다.

특히 이 같은 흐름은 여의도·을지로·강남 등 외식 물가가 높은 주요 오피스 상권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실제 여의도 메리어트 호텔이 운영하는 한정식 음식점 ‘수 라운지’의 올해(1~11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했다. 이 식당은 1인 기준 2만원대 중후반 점심 메뉴를 판매 중인데 인근 일반 한식당과 비교해도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이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업계에 따르면 호텔에서 뷔페를 제외한 일반 식음 매장은 가격 상승폭이 크지 않은 편이다. 뷔페의 경우 랍스터, 대게, 소고기 등 물가 변동에 민감한 시그니처 메뉴가 많아 가격 연동이 즉각적으로 이뤄진다. 반면 시설 내 식음 매장이나 라운지바는 파스타, 샌드위치 등 간단한 식사 메뉴나 단품 위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다양한 메뉴를 갖춘 뷔페에 비해 물가 변동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설명이다.

수요 변화를 겨냥해 업계는 가격과 분위기의 문턱을 낮춘 ‘캐주얼 파인다이닝’ 형태 매장을 강화하고 있다. 파르나스호텔은 지난 22일 유럽 식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다이닝 매장 ‘메르카토521’을 새로 오픈했다. 피자, 수제 버거, 파스타 등 대중적 메뉴를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해 보다 넓은 수요층을 공략한 게 특징. 메뉴 가격은 일반 파인다이닝보다 저렴한 3만~5만원대로 형성돼있다.
파르나스호텔에 따르면 이 매장은 현재 점심 시간대 예약까지 빠르게 마감되며 내년 1월2일분까지 예약이 완료된 상태다. 호텔 투숙객뿐 아니라 인근 오피스 직원과 코엑스 방문객 등 워크인 고객 비중도 높다. 호텔 관계자는 “연말은 원래 호텔 수요가 많은 시기지만 저녁뿐 아니라 점심 시간대 예약까지 이어지고 있어 식음매장 수요가 뚜렷하게 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물가에도 호텔 식음매장 수요가 늘어난 배경으로 소비자 심리 변화를 꼽았다. 외식 비용이 전반적으로 오른 상황에서 일반 음식점 대비 공간과 서비스 만족도가 높은 호텔 식음매장이 상대적으로 안정적 선택지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넉넉한 좌석 배치와 쾌적한 분위기, 주차공간 등 부가 요소가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물가가 오를수록 소비자들은 실패 확률이 낮은 선택을 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외식 소비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가격 차이보다 ‘경험의 차이’를 더 중요하게 인식하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호텔 식음매장은 ‘조금 비싸더라도 만족은 확실하다’는 인식 때문에 심리적 손실을 줄여주는 선택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수림 한경닷컴 기자 paksr365@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