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시 전문가들은 대체로 내년 주식시장을 ‘상고하저’로 예상한다. 내년 상반기까지 상승세가 이어지다가 하반기부터 옥석 가리기가 시작되면서 시장이 주춤할 것이라는 관측이다.신한자산운용 투자 전략을 총괄하는 정성한 최고운용책임자(CIO·사진)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하방이 단단하지만 크게 오르지도 않는 지지부진한 장세가 이어지다가 하반기부터 반도체 등 주도주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상승 국면이 나타날 것으로 본다. 이른바 ‘상저하고’ 전망이다.
정 CIO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고평가 논쟁이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하반기 들어 빅테크 설비 투자가 수치로 확인되면서 증시 상승세가 재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 코스피지수는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준 1.25~1.5배 수준인 3900~4700선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하반기 상승세를 주도할 종목으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종을 꼽았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뿐만 아니라 D램과 낸드플래시 같은 범용(레거시) 반도체 가격도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정 CIO는 “지금까지 AI 관련 반도체 수요는 학습에 탁월한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집중됐다”며 “앞으로는 추론 영역이 중요해져 GPU를 보완할 중앙처리장치(CPU)와 범용 반도체 수요도 함께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상반기 AI 관련주가 등락을 거듭하는 동안에는 그간 시장에서 소외된 가치주가 주목받을 것으로 봤다. 유통주와 의류주 등이 대표적이다. 정 CIO는 “이들 업종은 그간 업황이 좋지 않아 재고 조정 등 비용 절감에 힘써왔다”며 “실적이 바닥을 찍고 개선되며 낮은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이 부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스닥시장 등의 중소형주 투자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내년에는 종목별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정 CIO는 “주도 업종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오른 종목 중에서도 부채가 과도한 기업은 유동성이 마를 때 위험해질 수 있다”며 “코스닥시장은 시가총액 상위 기업 집중도가 낮아 주도주가 부각되기 어려운 구조인 만큼 내년에도 코스피지수와의 격차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내년 주식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변수로는 실질금리를 꼽았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연 3.75%다. 시장 예상대로 내년에 한 차례 금리를 인하하면 연 3.5% 수준이 된다. 연율 기준 3% 안팎을 오가고 있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내년에 3.5% 안팎까지 오르면 실질금리는 소폭 마이너스로 돌아설 수 있다. 정 CIO는 “실질금리가 하락하면 현금 가치가 떨어져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대거 유입될 수 있다”며 “반대로 물가가 3.5% 이상으로 치솟으면 기준금리 인하가 어려워져 시장이 망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