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아바타’ 시리즈는 제임스 캐머런의 원대한 이상과 세계관을 담고 있다. 특히 그의 공상과학(SF)적 미래관, 인간 유전자의 변이, 새로운 생태계의 발견과 보존, 인류 유산의 새로운 시작 등을 집대성했다. 그러나 핵심은 다소 복고적이다. 미국 제국주의의 발흥, 침략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느껴져서다. 기이하게도 이번 ‘아바타: 불과 재’를 보고 있으면 멀게는 1960년 오드리 헵번이 나온 존 휴스턴 감독의 ‘언포기븐’이 떠오른다. 케빈 코스트너 감독·주연의 ‘늑대와 춤을’(1990)과는 판박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할리우드에서는 돈이 곧 왕이다. 돈을 벌어들인 감독은 왕 대우를 받는다. 과거 조지 루커스가 그랬고, 지금은 캐머런이 그렇다. 루커스는 ‘스타워즈’ 시리즈(순서상 4~6편·1977~1983)로 우리 돈 9조원을 벌어들였다. 캐머런은 1편과 2편으로 54억달러 이상, 우리 돈으로 약 8조원을 벌어들였다. 이 정도면 무소불위다. 어떤 작품을 어떤 방식으로 제작하든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 1954년생인 캐머런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언터처블’이다.이것이 이번 영화 ‘아바타: 불과 재’가 무려 197분짜리 대작인 이유다. 그가 흥행성이 보장되지 않은 위태위태한 감독이었다면 그 어떤 제작자도 이런 러닝타임의 영화를 만들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극장 회전율이 나오지 않고, 하루 상영 회차를 아무리 많아도 3회밖에 잡지 못한다면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을까. 이번 영화의 제작비는 4억달러, 약 6000억원이다. 할리우드는 지금까지 보여온 흥행 트렌드로 봤을 때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으리라 전망한다.
미국사를 다시 쓰려는 캐머런의 야심
미국 백인 사회의 양심적 지식인들은 건국 과정에서 네이티브 아메리칸, 곧 아메리카 원주민 대량 학살이 자행된 것에 역사적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네이티브 아메리칸과 동화돼 같이 살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늑대와 춤을’에서 던바 중위(케빈 코스트너 분)는 자연과 어우러진 수우족의 삶에 매료되고 부족 여성 ‘주먹 쥐고 일어서’(메리 맥도널 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는 이름을 ‘늑대와 춤을’로, 자신의 정체성을 네이티브 아메리칸으로 바꾼다. 그러나 백인 기병대는 수우족뿐 아니라 원주민 전체의 삶을 파괴하려 하고 늑대와 춤을은 부족의 새로운 리더가 돼 이들과 맞선다.던바 중위의 서사가 펼쳐지던 공간을 우주 판도라 행성으로 바꿨을 뿐 나비족에 동화되는 주인공 제이크(샘 워딩턴 분)의 이야기는 ‘늑대와 춤을’과 같다. 던바 중위가 여인 주먹 쥐고 일어서를 만났듯 제이크도 나비족 여인 네이티리(조이 살다나 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던바 중위가 명마 시스코를 타고 다니며 주변을 맴도는 늑대 ‘하얀발’을 통해 서부의 황량한 자연과 교감하고 지배하는 것처럼, 제이크 역시 인간과 나비족의 유전자를 합성해 만든 인공 육체 ‘아바타’를 조종하며 판도라에 서식하는 토르크(거대한 크기의 포식자 익룡)를 타고 다닌다.
그는 나비족에게 토르크 막토(토르크를 타고 다니는 자)란 칭호를 얻으며 지도자로 부상한다. 북군 수색대 출신인 던바 중위가 원주민 편에서 싸우듯 제이크, 곧 토르크 막토 또한 지구에서 파견돼 나온 군산복합체사령부 RDA의 군대 조직과 대혈투를 벌인다.
영화가 갖는 시의성도 만만치 않다. RDA가 행성 판도라에 온 것은 최첨단 산업 전반에 이용되는 초전도체의 원료 언옵테늄이라는 광물을 채굴하기 위해서다. 이걸 위해 RDA는 나비족을 그들의 생존 기반인 ‘영혼의 나무’에서 떼어내려는 군사작전을 펼친다. 언옵테늄이 이 영혼의 나무에서 생성된 것. 영화의 언옵테늄은 최근 디지털산업 개발 시대에 절대적 원료로 여겨지는 희토류를 연상하게 한다.
RDA의 침략은 디지털 원재료를 놓고 경제 봉쇄와 군사 제재 및 갈등을 벌이는 현재의 강대국 외교를 생각나게 한다. 따라서 캐머런이 그리는 이른바 ‘우주 전쟁’은 어쩌면 신제국주의 체제로 가고 있는 현 세계 질서를 은유하는 것일 수 있다. 캐머런이 영화를 통해 전하는 경고는 과거 백인이 미국 땅에서 저지른 원주민 대학살처럼 다가오는 우주 시대에 또다시 패권주의의 폐해를 가져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바타’ 시리즈 전체의 세계관은 반전 평화를 지향하며 자원의 집중이나 독점적 권한 행사보다 경제적 분권과 민주적 배분에 맞춰져 있다.
스타워즈처럼, 6편의 아바타 대장정
‘아바타: 불과 재’의 이야기는 2편 ‘아바타: 물의 길’ 마지막 장면인 나비족 부부의 큰아들 네테이얌(제이미 플래터스 분)의 죽음 직후부터 시작한다. 제이크·네이티리 부부, 특히 엄마 네이티리는 상심에 빠져 의지를 상실한 상태다. 제이크는 남은 아들과 두 딸을 보살피며 외부의 적과 맞서 싸우기 위해 애쓴다. 지구인 아이 스파이더(잭 챔피언 분)는 양아들처럼 키운다. 스파이더는 제이크에게 양날의 검이다. 스파이더는 제이크의 정적이자 RDA 대령인 쿼리치(스티븐 랭 분)의 친아들이다.아바타 3편은 2편을 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서사이긴 하지만 1편을 보지 않고서는 알아들을 수 없다. 2029년에 ‘아바타 4’, 2031년에는 ‘아바타 5’ 제작을 계획 중이라고 하니 스토리는 더 복잡하고 정교해질 것이다. 1·2·3편에 이어 프리퀄 4·5·6편이 나온다는 얘기다. 그래서 순서상으로는 4·5·6·1·2·3의 시리즈가 된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와 비슷한 방식을 이어가려는 욕망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복잡한 척, 사실 ‘아바타’ 시리즈의 속내는 미국 서부 개척의 역사, JFK의 뉴프런티어, 레이건식 군산복합체 시대를 섞고 흔든 캐머런식 미국 역사의 기록이다. 그건 어쩌면 미국 현대 영화의 아버지로 불리던 DW 그리피스가 인종차별의 얼룩을 지닌 채 역사를 왜곡한 일에 대해 자신이 미국사를 새롭게 기술하고 싶어 하는 것일 수 있다. 캐머런은 “아임 킹 오브 더 월드”(그가 감독한 ‘타이타닉’ 속 대사)를 넘어 영화의 아버지, 영화 역사와 미국 역사의 아버지가 되려고 한다. 그것이야말로 캐머런이 만들어낸 아바타 세계관의 핵심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