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24일 13:5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미국 현지 제련소 건립 프로젝트로 미국 정부를 우군으로 끌어들여 내년에도 이사회 과반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최 회장이 추진하는 고려아연의 미국 합작법인(JV) 상대 신주발행을 금지해달라며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법원은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대해 "오로지 경영권 방어 목적 달성을 위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수석부장판사)는 영풍·MBK가 고려아연을 상대로 제기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기각했다. 영풍·MBK는 고려아연의 미국 현지 합작법인 '크루서블 조인트벤처(JV)'를 상대로 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한다며 가처분을 신청했다.
앞서 지난 15일 고려아연은 이사회에서 미국 정부가 참여하는 제련소 건립 프로젝트 추진을 결의했다.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는 전례없이 복잡한 구조로 설계됐다. 통상 해외 합작 프로젝트는 국내 기업과 해외투자자가 현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그 법인이 사업을 영위하지만, 고려아연은 합작법인이 직접 고려아연의 지분을 취득한 다음 고려아연이 신주납입대금을 갖고 별도의 현지 사업법인에 출자하는 복잡한 구조를 택했다.
영풍·MBK는 이 같은 사업구조와 유상증자 규모, 추진 시기 등을 고려할 때, 합작법인 상대 신주 발행은 경영상 필요나 합리적인 사업 판단의 결과가 아니라 최 회장의 경영권 유지를 목적으로 추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지배권 방어'를 위해 제3자에게 신주를 발행하는 것은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 참여 JV를 상대로 신주를 발행하는 것에는 경영상 필요성이 존재한다고 봤으며, 다른 자금조달 방식에 비해 현저하게 불합리하지도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제련소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은 경영 판단의 재량 범위 내에서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라며 "신주발행은 전체 거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신주발행에 경영상 필요가 있는지는 전체 구조와 맥락을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가 '고려아연에 대한 의결권 있는 지분 소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요구한 것을 사실로 인정한 재판부는 신주발행이 없다면 프로젝트 추진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는 합작법인을 통해 고려아연 지분을 확보해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길 원했던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미국 정부의 요구 하에 신주발행을 포함한 거래 구조가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영풍·MBK는 미국 정부가 참여하면서도 신주발행을 최소화하는 다른 거래구조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의 거래 목적과 동기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보기 어려워 프로젝트를 온전히 이뤄지게 하는 방법이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고려아연이 신주발행을 결정한 것은 경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서 그에 따라 영풍·MBK의 신주인수권이 제한되는 것은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해 부득이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합작법인 대상 신주발행이 이뤄진 이후에도 영풍·MBK가 최대주주 지위를 잃지 않는다는 점도 이번 유상증자가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추진된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근거로 언급됐다. 신주발행이 다른 자금조달 방안에 비해 현저히 불합리하지 않기 때문에 개정 상법 이후 주주충실의무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재판부는 강조했다.
연말 주주명부 폐쇄일을 앞두고 오는 26일 납입을 마칠 수 있게 되면서 최 회장은 10.59%의 우호지분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미국 현지 합작법인 상대 신주발행이 없었다면 현재 19명인 고려아연 이사회는 직무정지된 4명의 이사를 제외하고 '4(영풍·MBK) 대 11(최 회장)' 구도에서 내년 3월 '7 대 8'의 대등한 구도로 재편되는 게 기정사실이었다. 그러나 최 회장 측이 우호지분을 10% 넘게 추가하면서 내년 정기주총에서 이사회는 '6 대 9'로 최 회장 측이 우위를 유지할 것으로 분석된다.
영풍·MBK는 가처분 기각 결정에 입장문을 내고 "이번 절차를 통해 제기됐던 기존 주주의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 투자 계약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 그리고 고려아연이 중장기적으로 부담하게 될 재무적·경영적 위험 요소들이 충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최대주주로서 고려아연이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받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건설적이고 지속적인 역할을 수행해 나가겠다"고 했다.
송은경 기자 norae@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