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한 말투였다. 스크린 데뷔작 개봉을 앞둔 소감도,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얼굴에는 기대감과 설렘이 불쑥불쑥 드러났다. "큰 화면에 제 얼굴이 나오는 게 로망이었거든요." 배우 추영우는 막 영화라는 세계에 발을 디뎠다. 이치조 미사키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이하 '오세이사')는 그에게 첫 스크린 주연작이자, 오래 품어왔던 꿈에 처음 다가간 순간이다.'오세이사'는 하루가 지나면 기억이 사라지는 소녀 서윤(신시아)과, 매일 그녀의 하루를 대신 기억해 주는 소년 재원(추영우)의 사랑을 그린 청춘 멜로다. 일본에서 먼저 영화화돼 흥행에 성공했고, 원작 소설 역시 전 세계 130만 부 이상 판매되며 탄탄한 팬층을 확보했다. 리메이크라는 부담스러운 조건 속에서도 추영우는 "부담보다 설렘이 훨씬 컸다"고 말했다. "원작을 정말 좋아했다. 우리 영화는 그대로 따라가기보다는 완전히 다른 해석이다. 그래서 오히려 달라서 좋았다"고 했다.
그는 소설과 일본 영화 모두를 본 상태에서 시나리오를 받았다.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가 다 있으면 항상 소설을 먼저 읽는 편이죠. 소설은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거든요. 리메이크 하면서 완성작을 보니 한국 배경이라는 점이 특히 좋았어요. 제 경험을 자연스럽게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추영우가 연기한 김재원은 그동안 그가 연기했던 작품 중 가장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그는 "그래서 가장 어려운 캐릭터였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장난기 많은 캐릭터도 아니고, 사건을 끌고 가는 인물도 아니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보이는 평범함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는 연기할 때마다 "방금 괜찮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더 장난도 치고 싶고, 대사도 더 맛깔나게 치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감독님이 눌러주셨죠. 영화를 보고 나니 감독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극 중 재원은 병을 앓고 있지만, 그 설정은 영화 중반 이후에야 드러난다. 추영우는 "아픈 걸 중간중간 보여줘야 하지 않나 고민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연기에 담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감독님을 믿었다. 결과적으로는 서윤을 바라보는 감정에 집중하는 게 맞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을 위해 그는 약 10kg 가까이 체중을 감량했다. 하지만 시사회 후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살을 많이 뺐는데도 건강해 보인다는 얘기를 더 많이 들었다. 심장 너무 잘 뛸 것 같다는 소리도 들었다"며 웃었다. 그는 그 이유로 "기본적으로 체격이 있는 편이라 병약해 보이지는 않더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한여름 야외 촬영이 많아서 피부가 많이 탔고, 집안 내력으로 혈관이 잘 드러나는 편이라 더 건강해 보였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음에 아픈 캐릭터나 정말 말라야 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면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누워서 살을 뺄 것"이라며 "시행착오를 한 번 겪은 셈"이라고 말했다.

재원의 첫사랑 감정에는 그의 실제 기억도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추영우는 고등학교 입학 당시를 떠올리며 "시험 보고 들어가는 고등학교였다. 입학식 날 강당에 400명이 모였는데, 전교 1등을 한 친구가 호명됐다. 괜히 슬로모션처럼 보이더라"고 회상했다. 이어 "공부를 정말 잘하는 친구고, 특별반에 들어가 있어서 같이 수업을 듣지는 못했지만 괜히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 친구가 첫사랑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시절의 설렘과 긴장감은 아직도 또렷하다"며 "재원을 연기할 때 그런 감정을 많이 떠올렸다"고 했다.
고등학생 특유의 어설픔을 살리기 위해 그는 과거의 자신을 다시 불러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책상에 어떻게 앉았는지, 친구랑 이야기할 때 말끝을 어떻게 흐렸는지 떠올렸어요. 어른이 된 지 오래돼서 무의식적으로 어른스러운 말투가 나올 때도 있거든요." 그는 당시 친구들과 찍은 영상을 찾아보며 표정과 웃음까지 참고했다고 했다.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멋있는 척하지 않고, 바보같이 웃던 모습이 고등학생 때 저의 모습과 정말 닮았다고요."
촬영 현장은 여름의 열기만큼 뜨거웠다. 전남 여수에서 진행된 야외 촬영이 많았고, 인형 탈을 쓰고 촬영한 장면도 있었다. 그는 "사람이 많아서 부끄럽긴 했지만, 제일 더운 날이라 더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크루즈 위에서 밤새 찍은 키스신에 대해서는 "테이크를 10번 넘게 갔다. 신시아에게는 첫 키스신이라 더 조심스러웠다"고 전했다.

원작이 있는 작품에 대한 그의 태도는 담담했다. 그는 "원작을 소중하게 여기는 분들은 안 보셔도 된다. 이미 본 이야기를 다시 보는 걸 좋아하는 분들께는 보너스 같은 영화가 될 수 있다"며 "우리 영화는 싱크로율을 그대로 맞춘 작품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해석을 넣은 것"이라며 "그래서 더 한국적인 감정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세이사' 관전포인트에 대해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 지금 함께하는 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영화"라며 "보면서 각자의 좋은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첫 영화 주연을 마친 그는 "영화를 또 하고 싶어졌다"며 스크린 작업에 대한 의욕도 숨기지 않았다.
멜로 장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연기 선생님과의 일화를 하나 꺼냈다. "연기 선생님이 농담처럼 그러셨어요. 강남에 건물 하나 올리고 싶으면 멜로를 하라고요." 그는 그러면서 "그래서 멜로를 선택한 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추영우는 "무작정 멜로나 로맨스를 택하고 싶지는 않다"고 선을 그었다. 장르보다 중요한 것은 캐릭터와 대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야기가 재미있고, 감정이 남는 작품을 하고 싶다"며 "'오세이사' 역시 멜로라서가 아니라, 인물과 정서가 마음에 와 닿았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추영우는 뚜렷한 연기 철학이 있었다. "드라마, 영화를 하면서 제가 하는 연기에 대한 가치관이 맞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배우는, 캐릭터는 연출가의 소품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튀기보다 잘 어우러지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다음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연출가의 더 나은 소품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옥씨부인전', '중증외상센터' 등에서 활약하며 올해의 라이징 스타라는 평가를 받는 그는 "'라이징스타'라는 말이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부담도 된다.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겸손히 말했다.
현재 그는 안판석 감독의 '연애박사'를 촬영 중이다. 그는 최근 술과 커피를 끊고 건강 관리에 들어갔다. "하루에 커피 네다섯잔 씩 마셨는데 이제 커피는 디카페인만 마셔요. 술도 세 달간 안 마셨죠. 앞으로도 마실 계획은 없어요. 드라마나 광고, 홍보 스케줄 때문에 잠 잘 시간도 부족하거든요. 커피, 술까지 곁들이면 큰일 날 것 같아 건강을 위해 끊었습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안 만나게 됐어요. 요즘 집에서 메이플스토리 하고 있어요. 이벤트 중이거든요. 하하."
추영우 청춘의 한 페이지를 조심스럽게 꺼내 놓은 '오세이사'. 그에게 이 영화는 "어른이 된 뒤 다시 꺼내 보고 싶은 기억 같은 작품"이다. 그의 첫 스크린 주연작은 그렇게, 기억과 사랑에 대한 질문을 남긴 채 관객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