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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의 시선] 타자기 하나 가지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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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의 시선] 타자기 하나 가지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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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장정일의 장편소설 <아담이 눈 뜰 때>(1990)는 이런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 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인 대입 재수생 아담은 어른들의 어두운 세계에 휩싸여 방황한다. 순수한 그의 눈에 비치는 사회는 특히, 정치적 모리배들에 의해 정의와 진실이 왜곡돼 있다. 그는 자신이 ‘가짜 낙원’에서 잘못 눈 뜬 존재임을 깨닫고는 그 “가짜 낙원이 너무 무서워서 소리 내어” 운다. 이런 결말에 이르러 아담은 자신이 원하던 저 세 가지를 얻게 되지만, 이미 그의 영혼은 세상과 인간에 대한 불신 때문에 절망처럼 상처가 깊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의 독한 버전쯤 되겠는 이 성장소설의 내용을 설명하려는 게 아니다. 타자기(창작)와 뭉크 화집(성찰)과 턴테이블(감성)만을 원했다는 저 문장에 대한 ‘작은 상념(想念)’이 어쩌면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절망을 물리치는 법문(法門)처럼 요긴하진 않을까 싶을 뿐이다.


    사람만 죽어서 사라지는 게 아니다. 버스차장, 전화교환수, 삐삐, 주판, 등사기, 영사기사(映寫技師), 윤전공, 전보(電報) 같은 것들이 쓸모를 잃고 사라진다. 그리고 타자기가 있다.

    살다 보면 하나쯤은, 제 인생의 실존을 상징하는 물건이 생기게 된다. 입김이 하얗게 보이는 옥탑방 냉골에서 담요를 뒤집어쓴 채 타자기 건반을 한 자 한 자 두드리며 글을 쓰던 열여덟, 열아홉 살의 나를 기억한다. 아담이 그랬듯 어렵게 구한 타자기였고, 활자 공이가 타닥타닥 백지 위를 때리며 새겨지는 그 순간순간의 느낌이 내 손끝과 가슴에 아직도 남아 있다. 호주머니 속 스마트폰 하나에 집필실과 도서관과 비서진 등이 다 들어 있는 지금과 비교해보면, 타자기로 글을 쓰던 시절은 창작에 열악했다. 역으로 이 말은, 과거의 그 열악함만큼 요즘 창작의 수준이 훨씬 높아져야 맞다는 뜻이 된다. 타자기로도 좋은 글을 쓰는 이는 발전된 도구들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으되, 타자기만으로는 글을 쓸 수 없는 이는 발전된 도구들의 노예가 된다.


    더 가지려는 게 아니라 다 가지려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고, 자신의 욕망이나 착각과는 달리 열등하게 되어 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타자기 하나면 이미 충분한 것처럼,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자각이 마음에서 빛나야 인간과 인간이 하는 일은 진실로 진보한다. AI로 인해 머잖아 작가도 사라질 거라고 하는데(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예술언어는 바둑과는 다르다), 사실 내 기준이라면 ‘작가’라는 존재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가령 20세기에는 누구도 세계에 대한 작가의 비평 행위를 낯설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의문과 갈등이 있으면 작가에게 물었다.

    이제 작가는 셀럽 희망자이지 ‘현대의 사제(司祭)’가 아니다. 아무나 작가여서 아무도 작가가 아닌 시대다. 작가정신과 작가의 태도, 작가라는 종(種) 자체가 변질된 것이다. 하여 ‘20세기의 작가’로서 21세기에도 작가이고자 하는 이는 모독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죽음이란 제대로 살기 위해 있는 것이지, 삶에서 도망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오직 타자기 하나만 원하던 내 그 마음이 세상과의 불리한 싸움을 감행하게 해서다. 이는 인생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예컨대 AI와 AGI가 인간의 온갖 숙제들을 해결해준다고 한들, 인간은 결코 자신에 대한 비관에서 해방될 수 없다.



    결국 인간을 끝까지 괴롭히는 것은 돈과 권력, 생로병사만이 아니라 외로움, 마음의 상처, 어리석음과 비겁함, 자신에 대한 무지, 욕망의 포화와 그 허무, 나를 충만케 하는 노동의 부재 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가짜 낙원’임을 알아차렸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고통에 울고 있는 영혼은 패배자의 영혼이 아니라, 깨어 있는 영혼이다. 타자기조차도 필요없다. 타자기 하나만 가졌으면 했던 그 마음만 아직도 우리에게 있다면, 당신과 나는 불행한 시대라고 기억될 이 인생을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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