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규 상장한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이 이유 없이 급등락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합병할 기업이 없는 스팩은 사실상 '페이퍼컴퍼니'인데, 단기 차익을 노린 자금이 몰린 탓이다. 전문가들은 근거 없는 추격 매수는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합병 대상 기업이 정해지지 않은 스팩 주가는 시간이 흐르며 공모가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3660원에 거래를 시작한 엔에이치스팩32호는 4180원까지 올랐다가 하한가인 2690원에 마감했다. 상장 첫날인 지난 5일에는 5700원까지 치솟으며 장중 한때 '따블'(공모가 대비 2배 상승)을 기록하는 등 변동성이 큰 모습을 보였다.
지난 1일 코스닥에 상장한 미래에셋비전스팩9호도 공모가보다 66.75% 급등한 3335원에 마감했다. 삼성스팩12호도 상장 첫날인 지난달 28일 51.5% 뛴 3030원에 거래를 마쳤다.
공모주 시장에 불이 붙은 가운데 스팩에도 매수세가 몰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7일 코스닥에 상장한 이노테크는 2월 상장한 위너스 이후 8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따따블(공모가 대비 4배 상승)을 기록했다. 이후 큐리오시스, 에임드바이오도 따따블을 달성했다. 최근 1개월 신규 상장한 15개 종목 중 상장 첫날 공모가 아래서 마감한 종목은 1개뿐이다.
하지만 합병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신규 스팩이 급등락하는 건 정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팩은 비상장 기업과의 합병을 목적으로 설립된 서류상 회사(페이퍼 컴퍼니)다. 증권사가 스팩을 설립하고 신주를 발행해 일반인 대상 공모주 청약 절차를 통해 자금을 모은다.
스팩은 오로지 인수·합병만을 위해 존재하다 보니 합병 소식이 있기 전까지는 경영 성과나 성장성을 따지기 어렵다. 이 때문에 스팩은 대부분 공모가 수준에서 머무르다 합병 소식이 알려진 뒤에야 주가가 움직인다.

증권가에서는 주가 상승 후 추격 매수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는 조언도 제기된다. 뚜렷한 호재 없이 급등한 스팩은 급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엔에이치스팩32호가 상장 이튿날 하한가를 기록한 가운데 미래에셋비전스팩9호도 4거래일 연속 10%대 하락폭을 기록하고 있다. 미래에셋비전스팩9호를 고점(5900원)에 매수한 투자자의 현재 손실률은 60%에 달한다. 상장 둘째날과 셋째날 상한가를 기록했던 삼성스팩12호도 3거래일 내리 하락하고 있다.
스팩 거래가 개인 투자자 간 '폭탄 돌리기' 양상을 띠고 있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엔에이치스팩32호, 미래에셋비전스팩9호, 삼성스팩12호의 개인 매매 비중은 90%를 웃돈다. 미래에셋비전스팩9호의 전날 거래에서 개인이 차지한 비중은 95.25%에 달했다.
게다가 모든 스팩이 합병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3년 이내에 합병에 성공하지 못하면 스팩은 상장폐지되고, 투자자들은 원금과 함께 3년간 예치한 돈을 이자와 함께 돌려받는다. 공모가인 2000원보다 위에서 매수한 투자자는 상장 폐지 시 손실을 볼 수 있다.
과거 스팩을 대상으로 '작전'까지 벌어진 사례도 있다. 2021년 당시 삼성머스트스팩5호가 1만2450원까지 치솟는 등 '스팩 광풍'이 불었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2021년 5월과 6월 중 주가 상승이 과도했던 스팩 17개 종목을 대상으로 기획감시를 실시한 결과, 그중 7개 종목에서 불공정거래 혐의사항이 발견됐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모주 활황으로 스팩 주가가 상장 직후 공모가 대비 100~200% 오른 뒤 급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사업 실체 부재, 합병 실패 리스크를 고려하면 추격 투자는 손실 위험이 크다. 개인 투자자는 소액 분산 투자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당부했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