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그제 기자간담회에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반영된 ‘신규 원전 2기’ 문제를 어떤 절차를 거쳐 판단할지 조만간 결정하겠다”고 했다. 당초 한국수력원자력은 연내 원전 부지 공모에 나서기로 했는데 이제 다시 신규 원전 건설과 관련해 공론 절차를 정한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지난 2월 확정된 11차 전기본에는 설비용량 1.4기가와트(GW)급 대형 원전 2기를 건설해 2037∼2038년 도입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신규 원전 건설에는 최대 15년 이상이 소요된다. 지금 당장 삽을 뜬다고 해도 2030년대 중반에야 비로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신속한 결정과 실행이 필요한 시기에 김 장관의 발언은 전 정권에서 합의한 계획조차 정치적 이념을 앞세워 백지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인공지능(AI) 시대 전력 수요 폭증은 예견된 상황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우선 공급하기로 한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개 가동에 들어가는 전력만 초대형 원전 1기 분량에 육박한다. 건설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50년까지 10GW 이상의 전력을 필요로 한다.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선 재생에너지 확대가 불가피하지만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인 첨단 산업에 간헐성이 큰 태양광·풍력만으로 대응하겠다는 건 현실을 외면한 발상이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주요국이 원전 건설이나 재가동을 서두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국내 원전 정책의 모호함이 원전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아랍에미리트(UAE), 튀르키예를 순방하며 원전 세일즈에 나섰다.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보를 위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작 국내에서는 신규 원전 건설을 사실상 보류하고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의 ‘국내 탈원전, 해외 수출’이라는 모순된 정책이 결국 해외 수주 실패로 귀결된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이념에 치우치거나 ‘공론화 절차’ 마련이라는 지루한 논의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AI 시대 전력 확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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