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조·폐기 과정도 공개해야
23일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2027년부터 유럽에서 유통되는 모든 섬유·의류 제품은 의무적으로 DPP를 적용해야 한다. DPP 의무화는 EU가 지난해 발표한 ‘지속 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ESPR)’의 일환이다. 팔리지 않은 재고를 무분별하게 폐기하는 걸 막고, 제품 생산 전후 단계를 소비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취지에서 마련했다. EU는 DPP를 시행하지 않는 기업의 시장 진입을 제한할 계획이다.유럽은 미주와 함께 글로벌 패션산업을 이끄는 양대 시장이다. 업계에선 DPP 의무화를 패스트패션을 겨냥한 정책으로 보고 있다. 패스트패션은 이름 그대로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제품을 생산하는 특성상 유행이 지난 옷은 고스란히 폐기 처리된다. 최근 유행 주기가 짧아지면서 폐기물이 늘어나고 있다. 상당수 명품 브랜드도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해 미판매 재고를 할인 판매하는 대신 불태운다. DPP 시스템을 적용하면 이 같은 관행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QR코드, 바코드, 전자태그(RFID) 리더 칩 등을 통해 제품 폐기 과정을 낱낱이 공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브랜드들은 선제 대응에 나섰다. 버버리, 코치, 끌로에, H&M 등이 대표적이다. 자체 DPP를 구축해 주요 제품 공급망과 생산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또 제품이 재활용될 수 있도록 본사 주도로 재판매 서비스도 지원한다. DPP가 유럽을 넘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미국 유통 대기업 타깃도 올해 자체 여성복 브랜드인 유니버설스레드 의류 3500만 벌에 DPP QR코드를 도입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도 내부적으로 DPP 시스템을 갖추고 준비에 나섰다. 타임, 시스템 등으로 유럽에 진출한 한섬은 물류센터별, 시즌별, 연차별 재고 현황과 원자재 물동량 모니터링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자체 DPP 구축을 준비 중이다.
◇정부도 ‘K-DPP’ 개발 나서
인력과 자금이 충분한 글로벌 대기업은 선제 대응에 나섰지만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업체나 중소 브랜드는 아직 EU의 세부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은 탓에 어떤 데이터를 준비해야 하는지 감조차 못 잡고 있다. 한 패션회사 관계자는 “분업체계가 고도화돼 있는 패션업 특성상 원사, 원단, 봉제 등 과정을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며 “제품별 탄소 배출량을 정확히 계산하는 과정도 까다로워 중소 업체들의 부담이 상당하다”고 했다.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대응에 나섰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5월 의류환경협의체를 발족했다. 산업통상부는 한국섬유산업연합회, 국내 DPP 솔루션 업체 윤회와 손잡고 국내 실정에 맞는 K-DPP 개발도 추진한다. 노힘찬 윤회 대표는 “DPP가 패션업계의 뉴노멀이 될 수 있는 만큼 K패션의 핵심 경쟁력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