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오전 서울 금천구 소재 홈플러스 시흥점. 입구에 “고별 정리 세일”이라고 적힌 커다란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매장뿐 아니라 인근 지하철역과 주변을 지나는 버스 외벽에도 같은 광고 문구가 나붙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하 1층 판매 공간의 3분의 1가량이 고별 행사 매대로 꾸며져 있고, “90% 할인”이라고 쓰인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시흥점은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신청 이후 적자폭이 큰 점포로 분류되면서 폐점이 예정됐던 매장 중 하나다.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 측은 수익성 개선을 위해 시흥점을 포함한 15개 점포의 영업을 연내 종료하기로 했다가, 정치권과의 협의 끝에 일시 보류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부 매장에서는 대규모 고별 행사가 진행되면서 점주와 소비자들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날 시흥점 내부는 행사 공간은 물론 매장 전체적으로 폐점 분위기가 감지됐다. 기존 완구·자동차·레저 등 일상용품을 판매하던 공간은 관련 상품이 전부 빠지고 ‘고별세일’ 품목들로 채워졌다. 삼성·LG전자 등 가전 매장도 철수한 상태였다. 계산대 앞에 있던 약국과 위층 미용실이 있던 자리도 내부가 텅 빈 채 ‘영업 종료’ 안내문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폐점 유예된 상황에서 이 같은 고별행사가 진행되자 입점 점주들은 다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이곳에서 임대매장을 운영 중인 50대 김모 씨는 “매장에 오는 고객이나 주변 지인들도 홈플러스가 언제 문을 닫는지 계속 물어본다”라며 “매장에서 고별행사까지 대대적으로 하고 있으니 장 보러 오는 손님들도 많이 혼란스러워 한다”고 했다.
그는 17년간 운영해온 매장을 이달 말까지만 열고 장사를 접기로 했다. 홈플러스 사태가 장기화하고 폐점 여부를 둘러싼 불확실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더는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 씨는 “이대로 불안감만 커질 바엔 잠시 쉬면서 새롭게 매장을 운영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려 한다”며 “능력이 없거나 장사가 안 돼서 문을 닫는 거면 모르겠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접으려니 먹먹하고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매장을 찾은 소비자들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인근에 거주하는 60대 주부 서모 씨는 “집에서 가장 가깝고 고기 같은 신선식품 품질도 다른 곳보다 괜찮아 자주 이용했는데 없어진다고 하니 아쉽다. 생각했던 것보다 고별행사 규모가 더 커서 이제 정말 문을 닫는다는 게 실감이 난다”고 말했다.

앞서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은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 등과의 면담을 통해 임대료 협상이 결렬된 15개 점포 폐점을 보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시흥점은 오는 13일부터 고별세일을 진행할 예정인 데다 가양점도 지난달 30일부터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울산남구점, 일산점 등 폐점이 보류됐던 매장들도 같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폐점이 공식 보류된 상황에서 재고 처리 성격이 강한 고별 행사가 진행되자 입점 점주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강경모 홈플러스입점협회 부회장은 “보류됐다고 해놓고 ‘고별 세일’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여는 건 모순 아니냐”라면서 “손님 입장에선 매장이 결국 문을 닫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불안과 혼란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는 해당 행사가 폐점 보류 결정 이전에 계획된 사안이라 진행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당초 폐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입점 브랜드 대상으로 행사 공간 계약을 마친 상태였다. 이후 폐점이 보류됐지만 계약상 의무를 저버리기 어려워 행사를 그대로 진행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홈플러스 인수합병(M&A)에 대한 기대감도 식어가는 분위기다. 지난달 업계 예상을 깨고 인수의향서가 접수되면서 파산 위기에 놓였던 상황이 반전되는 듯했지만 확실한 카드는 아니란 게 문제다. 인수 의향을 밝힌 인공지능(AI) 벤처기업 하렉스인포텍과 부동산 임대·개발업체 스노마드 모두 홈플러스를 인수할 만한 자금력이 증명되지 않았고 유통업 운영 경험도 전무한 곳이다.
홈플러스는 자금난 해소와 경영 정상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물류 수급이나 자금 문제를 완화할 수 있도록 여러 가능성을 협의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 방향은 정해진 게 아직 없다”고 말했다.
박수림 한경닷컴 기자 paksr365@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