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버스 노사협상의 분수령으로 여겨진 ‘동아운수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조 측이 사실상 패배하면서 이를 만회할 카드로 다시 총파업을 꺼내들었다. 서울시와의 협상에서 수세에 몰릴 것을 우려한 노조 측은 총파업 시기를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하루 전인 12일로 예고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험생을 볼모로 잡겠다는 서울버스노조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고 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민사1-3부(재판장 조미옥)는 지난달 29일 서울버스노조 동아운수지부 조합원 238명이 낸 통상임금 소송 항소심에서 조건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되 초과근로수당은 실제 일한 시간으로 다시 계산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노조가 요구한 18억9500만원 가운데 8억4382만원만 지급하도록 해 인용 비율은 44.5%에 그쳤다. 소송 비용 역시 노조 부담분이 60%로 더 컸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받긴 했지만 실익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사실상 패소’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판결은 교착 상태인 서울버스 임금·단체협상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노조 측은 그동안 소송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통상임금 관련 임단협을 거부해 왔다.
지난해 12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 이후 첫 하급심 판결에서 수당 지급액을 크게 낮추는 방식으로 경영진 부담을 덜어줬다는 평가다. 한 대형 로펌 노동 전문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 이후 통상임금 확대에 제동을 건 유의미한 판결”이라며 “청구액 중 절반도 인용이 안 되면 배보다 배꼽(소송비용)이 더 큰 상황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노조는 판결 이후 강경 기조로 선회했다. 보광운수·원버스·정평운수 노조는 단체교섭이 11일 밤까지 타결되지 않으면 수능 하루 전인 12일 첫차부터 운행을 멈추겠다고 선언했다. 상위단체인 서울버스노조도 이에 동조해 “서울시가 노조 요구사항을 계속 무시하며 성실히 교섭에 응하지 않는다면 12일부터 모든 시내버스의 전면 운행 중단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노조 내부에서조차 여론 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버스 노조원은 “버스 파업으로 수험생들이 단체 지각이라도 한다면 그 원성을 (노조 집행부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서울시는 파업 강행 가능성에 대비해 지하철 증편과 전세버스 투입 등 비상 수송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법원 판결에 대한 노조 측의 ‘분풀이성 파업’은 시민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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