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터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국방부) 장관이 4일 적극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이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2020년대 후반 건조를 시작해 2030년대 중후반에는 선도함 진수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우리 정부는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계기로 국방력을 크게 향상시켜 자주국방의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 강력한 美 동맹국의 모델”
이날 헤그세스 장관은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연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후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핵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동맹의 능력이 강해지길 원한다”며 “그런 차원에서 대한민국은 모델과 같은 국가다. 그러다 보니 한국이 더 강력한 능력, 최고 능력을 갖추는 것에 대해 마음을 열고 승인한 것”이라고 말했다.헤그세스 장관은 “한국은 조선업에서 세계적 수준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미 정부는 잠수함뿐만 아니라 수상함 전투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길 원한다”고 했다.
SCM에서 양국은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증대와 관련한 한국군의 역할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주한 미군이) 역내 다른 비상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이 높아져야 하는 상황”이라며 “북한의 재래식 무기 위협을 방어하는 데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북한 위협을 전담하고, 주한 미군이 필요시 역내 광범위한 위협에 대응하는 임무를 맡을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미는 이번 SCM에서 이재명 정부가 임기 중 실현을 목표로 내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 일정 등도 논의했다. 안 장관은 한국의 국방비 증액 계획을 설명했고 헤그세스 장관은 환영의 뜻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기술로 핵 잠수함 건조
정부는 이 같은 분위기에서 핵 잠수함 건조 사업을 서두르고 있다.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원종대 국방부 자원관리실장은 “오랜 기간 핵 잠수함 건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핵연료 확보가 가장 큰 난제였다”며 “연료 확보에 대한 한·미 협의가 진전됨에 따라 사업을 본격 추진할 여건이 마련됐다”고 말했다.원 실장은 “핵 잠수함에 장착될 원자로, 무장 체계 등 건조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있고 안전성 검증을 진행 중”이라며 “지금까지 확보한 핵심 기술과 국가 역량을 결집하면 우리 기술로 핵추진 잠수함 건조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이어 “미국 측과 협의해 연료를 확보하고 2020년대 후반 건조 단계에 진입한다면 2030년대 중·후반에는 선도함 진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방부는 핵 잠수함 건조에 따른 외교 협의와 제도적 지원 등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를 국가전략사업화하고 정부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한·미가 큰 틀에서 핵 잠수함 도입에는 합의했지만 세부 내용에선 엇갈리고 있는 점은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화가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에서 한국 핵 잠수함을 건조할 것이라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이날 헤그세스 장관은 이와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구체적으로 어떤 승인 과정을 거치는지는 이 자리에서 자세하게 말하지 못한다”며 “선의를 갖고 긍정적 결과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사회의 핵무기 개발 의혹 제기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외신 기자가 안 장관에게 ‘한국이 핵무기 개발 추진을 희망하냐’고 질문하기도 했다. 안 장관은 “대한민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 가입해 있어 핵을 가질 수 없는 나라”라며 “한반도 비핵화는 흔들림 없는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이현일/김형규 기자 hiuneal@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