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 식별·미사일 종류까지 'AI 참모장'이 결정

영국의 프리미엄 헤어드라이기 제조사 다이슨과 스위스의 명품 시계 제조사 브라이틀링. 이 두 기업은 자사 제품의 품질과 성능을 높이는 데 한국 코스닥시장 상장 기업 코셈의 주사전자현미경(SEM)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다. SEM은 전자를 초미세 분석 대상(시료)에 총처럼 쏜 뒤 반사되는 전자의 궤적을 분석해 3차원 이미지를 그려내는 장치다. 코셈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SEM을 처음 국산화한 하이테크 기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오는 28~29일 서울 코엑스 마곡에서 여는 ‘국제 연구산업 컨벤션 2025’에 코셈, 큐알티, 펀진 등 국내 하이테크 연구산업 기업 100여 곳이 참가한다. 연구산업은 연구개발(R&D) 성과가 논문이나 실험실을 넘어 산업 현장으로 나갈 수 있게 돕는 산업을 말한다. 과기정통부가 4년 전부터 연구산업진흥법을 제정해 관련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크게 인공지능(AI) 솔루션, 연구장비, 시험분석 기업 등으로 나뉜다.

다이슨은 지난해 9월부터 코셈 SEM 제품을 도입했다. 헤어드라이어, 에어랩 등 자사 제품을 사용한 후 모발 손상 정도를 SEM으로 분석해 바람 세기와 온도를 최적화한다. 명품 시계 가운데 반도체 기술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브라이틀링 역시 코셈의 SEM을 사용한다. 브라이틀링은 온도·압력·자이로 센서 등으로 시계 무브먼트의 정확성을 높이는데 이들 초미세 부품 성능을 검증할 때 SEM을 쓴다.

코셈의 SEM은 초미세 부품이 들어가는 모든 산업군을 대상으로 공급되고 있다. 하나마이크론 등 반도체 기업은 물론 삼성SDI 등 2차전지 기업과 현대모비스, 쉐보레 등도 고객으로 확보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치 내 가장 중요한 계통인 조명광학계와 투영광학계를 독점 납품하는 독일의 기업 자이스도 코셈의 주요 고객 중 하나다. 코셈은 최근 대기압에서 작동하는 SEM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SEM은 진공 환경에서만 작동했다.

큐알티는 AI 반도체에 특화된 신뢰성 평가 솔루션을 개발했다. AI 반도체가 실제 구동 환경에서 받을 수 있는 각종 스트레스를 시뮬레이션해 최소 10년 수명을 담보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한다. 국내 대표 AI 반도체 기업 리벨리온이 큐알티의 솔루션을 쓰고 있다. 연구산업계 관계자는 “국내외 AI 반도체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큐알티 솔루션 수요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펀진은 AI 데이터 생성 플랫폼 ‘이글아이’로 국내 국방AI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국방부 산하 국방기술품질원의 DQ 인증을 받았다. DQ 인증은 수출 가능성이 큰 방위산업 제품 기술을 평가해 기품원이 부여한다. 펀진은 이 밖에 표적을 인식한 뒤 어떤 무기를 선택해 공격할지를 결정해주는 지휘결심지원체계 ‘KWM(킬 웹 매칭)’을 개발해 육군에 공급하고 있다. 드론이나 로봇 등 무인기를 전장에 투입하는 데 필요한 AI 소프트웨어다.

펀진은 첨단 레이더 위성(SAR) 등으로부터 오는 정보와 전장 센서 데이터 등을 결합해 육해공군 전력을 통합 운용하는 ‘AI 참모장’ 개발을 목표로 잡았다. 전차, 자주포 등 화력장비와 유도미사일 등 방공 체계, 전자기전 전력을 언제 어떤 상황에서 운용하면 최적의 효과를 낼 수 있는지 해법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AI가 전장의 모든 데이터를 분석하는 초거대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